(레프 톨스토이,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0)
톨스토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 평생 부와 명성, 안락한 가정 등 모든 것을 다 이룬, 인간적으론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년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쓰고, 그 후 수 년에 걸쳐 '안나 카레니나'를 쓴 후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사실 이 우울감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의 손에 자라고, 청년시절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모범적인 형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유년시절, 청년시절을 통해서 내면에 축적된 삶과 죽음의 의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장편 소설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 사랑, 죽음 등이 펼쳐진다. 작품 속의 수많은 인물들은 현실 속의 다양한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영원한 고전소설을 완성한 후,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감에 빠진다는 것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못 찾고, 자살충동을 느낀 그는 주변에 노끈이나, 권총을 숨겨 놓았다고 진술한다.
총 열여섯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작은 책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맞닥뜨리는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존재,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고뇌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나는 정교회라는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세례를 받고 자랐습니다.” 로 시작하여
"허공에 지지대 하나로 버티고 있는 인생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말하며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로 끝맺고 있다.
몇 개의 소제목에 주목하면서 읽다보면,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정신적 편력을 그리는 내용을 따라 함께 정신적 사유를 즐겨보자.
특히, '제 3장 진보에 대한 미신적 믿음과 형의 죽음으로부터, 제 4장 정지되어 버린 나의 삶, 제 7장 인생에 대한 네 가지 접근 방법, 제 13장 인간이 사는 목적 : 신앙의 본질, 제 15장 참된 신앙, 제 16장 진리를 추구하며'에 중점을 두고, 그의 의혹에 찬 여정을 따라가 보자.
그는 기독교 세례를 받고 자랐으나, 대학교 때 신앙을 잃고, 스스로 정한 규율 속에서 성장한다. 또한 16살에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형식적인 교육에 실망하여 중퇴를 하고 형의 권유로 군 입대를 한다. 군 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많은 의문을 품게 한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수많은 살상을 경험하고,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더 깊이 혼란에 빠진다. 더구나 그가 좋아하고 따랐던 형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삶에 대한 회의는 깊어간다.
"인생은 살아갈 의미나 가치가 전무한 허무뿐, 아무 것도 아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성장기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신이 있는가. 있다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왜 이런 사회악과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가. 나는 누군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었인가. 사후 세계는 있을까.
이렇게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누구나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한 물음으로 회의에 빠지는 혼란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따르는 일과에 묻혀서 그런 철학적, 종교적 의혹들을 잊고 살게된다. 아무리 캐 본들 영원한 수수께끼일 것이라고 포기한 채로. 그러나 톨스토이는 다방면에 걸쳐 끝까지 해답을 얻고자 탐구하며 고뇌한다.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으며, 끈질기고, 치열하게, 현자들의 인생관을 궁구하며 자기의 추론을 확장해간다. 그러는 중에도 끊임없이 생의 목적을 묻고, 참된 신앙과 진리를 찾아 헤맨다.
“ 나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P15), “인생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P25), “내가 오늘 하는 일이나 내일 하게 될 일의 결말은 무엇인가?, 내 인생 전체의 결말은 무엇인가?”(P39)
수많은 사상, 철학, 과학, 종교서적 등을 읽었으나 해답을 얻지 못한다. ‘삶은 아무 것도 아니며, 무의미할 뿐이다’고 심각한 허무주의에 빠진다. 결국 정신병증과 자살 충동 위기까지 이른다. 그러다가 ‘자기의 물음’에 모순을 발견한다. ‘형이상학적인 물음’은 ‘이성적인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유한한 인생’을 ‘무한하고 영원한 것’으로 답을 찾으려 했다는 모순을 깨달았다.
궁극적으로 톨스토이가 확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인간의 가장 심오한 지혜는 신앙에 의해 주어진 대답들 속에 보존 되어 있고, 이성을 기초로 해서 그 대답들을 부정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p80)’, 그는 ‘납득이 되지 않는 교리들을 반박하는 논리들은 온 힘을 다해 피하고서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려고’애를 썼다.(p104)
‘자신을 낮추고, 신앙을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성찬식 살과 피를 삼켰다(p109)’는 고백처럼 톨스토이가 얼마나 신앙심을 위해서 노력했는지 후반부 페이지 곳곳에 드러난다. 그 결과 ‘인생의 목적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 ‘동양의 옛 우화’(P32)를 비유로 소개한다. 들판에서 맹수에 습격당한 나그네가 맹수를 피해 마른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아래에는 입을 벌린 용이 기다리고 있다. 진퇴유곡에 빠진 나그네는 우물 중간 틈새에 낀 나뭇가지를 붙잡고 버틴다. 그러나 흰쥐와 검은 쥐가 나뭇가지를 갉아먹는다는 우화다.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이라는 시간을 의미한다.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삶에 대해서 네 명의 현인들은 각자 자기의 생각을 펼친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다시 생각해 본다.
소크라테스 “육신의 삶은 악이고, 거짓이며, 사멸은 복이기 때문에 그것을 갈망해야 한다.”
쇼펜하우어 “삶이라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무로 전환되는 것만이 유일하게 신성한 것이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고 공허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죽음 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석가모니 “생노병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삶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P56)
이러한 현자들의 대답을 통해서, 톨스토이 역시 인간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소수의 현인들에게서 눈을 돌려 더 많은 군중들이 어떤 삶의 자세로 이런 물음들을 극복하며 살아가는지를 연구하고 살펴본다.
첫째, “무지”이다. 삶이 악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여자들, 어리거나 미련한 사람들이다.
둘째, “쾌락주의”이다. 삶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이나 쥐를 애써 외면하고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가능한 최대한 누리며 사는 족속이다. 오늘날 욜로 족과 유사하다.
셋째, “힘”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어처구니 없고, 부조리한 삶을 즉시 끝내 버리는 결단력을 가진 자이다.
넷째, “약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톨스토이는 스스로 네 번째 무리에 속해 있다고 고백한다.
“땀 흘려 일해서 삶을 생산해 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참되게 살아가는 길로 보였다. 그런 삶이 인간의 삶에 부여하는 미가 참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였다.”(P86)
그는 농부들에게서 ‘신앙심을 토대로,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몇몇 기생충 같은 삶을 사는 소수의 인간이 아닌, 인류 전체의 삶을 생각하고 말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88)고 고백한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웃을 위해서 살아갈 때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한 삶이었다.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을 아는 것과 사는 것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다. 하느님은 생명이다. 하느님 없이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p98)라는 깨달음을 일갈한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신앙의 본질이며, 신앙의 본질은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는 의미를 삶에 부여하는 데 있다. 나는 왜 살며,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 신앙이다”(p103)라고 고백함으로서 지난한 톨스토이의 역정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참 신앙을 찾아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말년에 톨스토이는 귀족적 삶을 부정하고, 무소유·금욕·비폭력·사랑의 실천을 주장한다. 불완전한 인간과 지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지고 참된 신앙과 진리를 추구한 진실한 인간이었다.
그는 교회의 권위와 부도덕성을 거부하고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내세운다. 이를 이유로 교회는 그를 출교시킨다. 그는 조직된 정부를 반대했으며, 체제유지를 위한 탄압정치와 사유재산 소유를 비난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인 소피야는 그의 사상에 반대하며, 가정의 재산을 지키려 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심해졌고, 톨스토이는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 수도원으로 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여행 도중 폐렴에 걸려, 82세의 나이로 ‘아스타포보(Astapovo)’ 역 에서 죽음을 맞는다. 오늘날엔 톨스토이 역으로 불린다.
이 ‘고백록’을 읽으면서 대문호 거장으로서의 톨스토이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고 절망하며,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어 좋았다. 얇은 책이었으나, 그의 기나긴 정신적 편력이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그를 잘 알게 되고, 한결 친해진 기분이다. 오랜만에 위대한 작가에 푹 빠져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 인상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