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문학동네, 2017)
레프 톨스토이(1828)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 러시아의 대문호로, 인간의 도덕성과 삶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 현실주의 작가. 대표작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이 있다.
다른 책들에 밀려서, 쉽게 읽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고전명작을 꺼내들었다. 이참에 꼭 끝까지 읽으리라 다짐하며 책장을 펼쳤다. 러시아 소설은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 쉽사리 빠져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총3권 8부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적 배경, 문화, 상류사회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의 만남과 사랑을 통해서 행복한 결혼생활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게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이 문장은 글 쓰는 이들에게 잘 알려진 처음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나,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사연과 이유로 불행하다는 뜻이다.
영혼을 울리는 운명적인 사랑
안나는 고위 관리인 카레닌의 아내로,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라버니 부부의 냉전 상태를 중재하러 갔다가, 브론스키를 만나 숨이 멎을 듯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가정이 있는 안나의 사랑은 사회적 비난과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아들에 대한 양육권 상실로 점점 곤경에 빠지고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인 레빈은 작가 자신을 닮은 캐릭터로, 건실한 신앙심과 노동, 가족애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끊임없는 내적 고뇌 끝에 인간의 구원은 사랑과 진실한 노동,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가능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귀족 출신임에도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지낸다.
톨스토이는 안나와 레빈의 대비된 삶을 통해 사랑과 개인의 자유, 사회적 의무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소설을 쓰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 모든 것을 다 써 넣었고 아무것도 달리 쓸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고 진술한다.
그는 이 책을 쓰고 난 후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삶의 덧없음과 종교적인 회의에 빠져 더 이상 살아야할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자살충동을 느끼는 정신적 황폐함에 시달려야 했다.
소설 초고에는 책 제목을 ‘두 결혼’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는데, 이 후에 ‘안나 카레니나’로 제목을 바꾸었다. 두 결혼이란 ‘브론스키와 안나’의 결혼과 ‘레빈과 키티’의 결혼을 말한다. 전자가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불같은 사랑이라면, 후자는 인내와 절제로 때를 기다리며 성사되는 바람직한 결혼을 의미한다.
톨스토이는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바쳐서 얻는 사랑과 절제와 조화로 이루어진 진중한 사랑을 대비시켜 독자로 하여금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한다.
뜨겁게 불타는 사랑은 행복한가
인간의 행복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와 행동에 있다기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절제하고 현실적인 처지와 균형을 이룰 때 얻을 수 있다. 아무리 불같은 사랑이라지만, 아들과 멀쩡한 가정을 버리고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안나의 행동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인 인생, 한번 인간으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 가는데,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모른 척 돌아 선다고 미덕은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모든 것을 주고라도 오로지 사랑을 추구하는 그들의 사랑을 말릴 수는 없다. 안나의 사랑은 필연이었다.
만약, 안나가 브론스키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저 가정을 지키며 평범한 일생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무미하고 지루하며 싱거울 것 같다. 그런 삶 또한 썩 내키지 않는다.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불행해진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모임에서, 결혼상대로 누가 적합한지 의견이 분분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한다’와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로 갈렸다. 물론, 서로 좋아하는 사람과 한다면야 최상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 나 는 후자에 한표를 준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태도
허지만, 어떤 경우든 행복은 분수를 알고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감정에 치우쳐서 현실을 외면한다면 결코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 안나를 보라. 죄책감에 시달리다 불행을 자초하고야 말았다. 그녀와 얽힌 주변의 누구도 무사하지 않고, 온전히 행복할 수 없다. 작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절제와 균형을 이루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안나와 브론스키 처럼 너무나 뜨겁고 강렬한 사랑은 불안하다. 주변의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랑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하며, 죄책감에 시달려 영혼이 피폐해 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도덕적인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한 댓가는 그만큼 혹독하다.
하지만 인생이 무엇인가. 일회적인 생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면, 그것 또한 허망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모든 것을 불태운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돋보이는 미모,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만인의 시선을 끌었다.
군계일학의 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은 한 사람의 아내로 살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브론스키 역시 안나에 걸맞는 훤칠하게 잘생긴 외모로 두 사람은 완벽한 커플,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독보적인 연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사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점점 틈이 벌어지고,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한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안나의 외로움이 지나치게 사랑에 집착하기 때문이었던가. 자유롭게 바깥생활을 원하는 브론스키는 이런 집요한 간섭과 속박에 점점 지쳐가고 숨이 막혔다.
처음 그들이 만나던 날, 기차에 사람이 깔려죽는 사건은 이들의 불행을 암시하는 복선이었다. 안나는 결국 기찻길에 몸을 날려 생을 마친다.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절망에 빠진 브론스키는 사병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게 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난다.
레빈을 통해 전하는 작가의 메시지
한편, 브론스키를 사랑했다가 버림받은 키티는 결국, 레빈과 결혼한다. 레빈은 농촌에서 노동과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의 구원을 깨닫는다. 소박하며 진실한 그는 귀족 신분임에도 농부들과 어울리며 농사를 짓고 자연을 사랑한다. 안나의 삶과는 달리, 레빈은 도덕적 성숙과 내적 평화로 나아가며 작품의 균형을 이룬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레빈의 상념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톨스토이는 착하고 성실한 레빈을 통하여 자신의 신념을 전한다. 앞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뇌의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런 것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월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모든 순간 ‘선의 의미’를 생각하며, 착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영화로도 상영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나, 거장의 문체를 느끼며 책으로 읽고 싶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약속을 이제야 지키게 되었다. 지금도 안나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처참하고, 불쌍하다. 꼭 그래야만 했나. 문득 '주홍글씨'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