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권력
새벽이 되면 병실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진다. 밤새 들리던 기계 소리와 뒤척이는 인기척도 잦아들고, 창문 너머로는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회색빛 아침이 스며든다. 그 시간의 병실은 마치 잠든 동물들만 모여 있는 작은 왕국 같다.
그리고 이 왕국에는 분명한 질서가 하나 있다.
그 중심에는 TV 리모컨이 있다.
오랜 기간 입원해 계신 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날카로운 눈매와 또렷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망설임 없는 손놀림. 그녀가 리모컨을 쥐고 있는 순간, 병실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선택을 따르게 된다. 그녀는 마치 사자와도 같다.
누구도 “다른 걸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매일 새벽 6시
알람이라도 맞춘 듯 그녀는 일어나 TV를 켠다.
전원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조용했던 병실에는 아침 드라마의 대사가 흐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군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그녀의 채널 선택으로 시작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른 프로그램이 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예능도 보고 싶었고, 뉴스도 궁금했고,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채널을 틀어 놓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리모컨은 언제나 그녀의 손이 닿는 자리에 있었고, 그 질서를 깨고 싶다는 말은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녀가 검사실에 가거나 잠시 병실을 비우는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리모컨을 집어 든다. 마치 들키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주변을 한 번 살피고, 빠르게 채널을 돌린다. 짧은 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다른 프로그램을 보며 괜히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돌아오는 순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채널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녀가 생각보다 빨리 병실로 돌아와서 작전 실패를 외친다.
오랜 시간 병실에 머문다는 것은, 하루의 대부분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 안에서 TV를 켜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어쩌면 그녀에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내가 결정하는 시간’ 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랬다.
짧은 시간이지만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바꾸는 그 순간이, 병실 생활 속에서 내가 느끼는 작은 자유였다.
같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는 리모컨을 통해, 누군가는 잠을 통해, 또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새벽의 병실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6시가 되면 TV가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