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약한 맛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국어 수업 중에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고, 생리통이 심한 날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양호실로 갔다.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조퇴해야 했고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진찰을 받고 생리로 인한 통증이라며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다. 진통제를 먹고 나서는 통증이 나아져서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응급구조학과 진학을 했다. 친구들은 간호학과를 진학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과를 가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남들이 가는 학과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꿈을 고민하며 학과를 선택했다.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내가 가고 싶었던 소방공무원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었기에 응급구조학과로 진학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응급상황 관련한 공부를 했고 응급처치 실습도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처럼 생긴 인형인 애니를 가지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은 심장마비가 왔을 때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하여 심장을 뛰게끔 도와주는 기술이다. 처음 실습은 심장마비 상황을 예로 들어 의식이 있는지 확인하고 호흡과 맥박이 있는지 확인 후 인공호흡과 가슴압박을 배운다. 실습하는 데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교수님, 너무 긴장되어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차분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면 돼.”
긴장해서 속도도 빨라지고 팔도 구부러지고 생각만큼 잘 안 되었다.
손의 위치와 자세 등 틀린 부분을 수정해 주셨고 교수님께서 정확한 리듬과 압박의 깊이에 중요성을 알려주셨다. 정확하게 심폐소생술을 했을 때 회복력도 좋고 갈비뼈 부러지는 것과 내부 장기 손상도 덜 간다며 하셨다. 교수님과 함께 제주도에 있는 관공서에서 공무원, 일반인, 학생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러 다녔다. 가는 곳마다 심폐소생술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심폐소생술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 안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실제로 학교에서 다른 과 학생이 걸어가다가 매점 앞에서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졌다. 그것을 목격한 3학년 선배님이 보고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하였고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금 뒤 구급차가 왔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그 모습을 보고 열심히 공부해서 나도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라톤 대회나 각종 행사에서 의료봉사를 나가며 보고 듣고 경험해 보았다. 다리 근육에 경련이 왔을 때 쥐를 풀어주는 방법, 화상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을 이론으로만 배웠는데 막상 내 앞에 마라톤 도중 쥐가 나서 도움을 요청하러 오셨는데 가슴이 뛰고 응급처치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어떻게 하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의 모습을 본 선배님이 오셔서 신속하게 응급처치하셨다. 긴장도 하지 않고 신속하게 응급처치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부끄러웠다. 이후부터 긴장하지 않고 응급 처치할 방법은 수많은 연습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습하며 반복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소방서 실습 갔을 때 띠리릭, 구급 출동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구급 출동하기 위해 밖으로 달려갔다. 구급대원 선배님들과 함께 구급차를 타며 현장으로 갔다. 긴장되었지만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제세동기, 기도유지기, 기관 내 삽관 등을 꺼내 준비했고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환자분이 바닥에 누워계셨다. 선배님과 함께 처치를 분담하여 의식 확인, 호흡, 맥박을 검사한 후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이송할 병원과 의사 선생님께 연락하며 환자 상태를 알렸고 선배님은 인공호흡을 위한 삽관을 시도하였고 나는 가슴 압박했다. 심폐소생술을 한 뒤 들것으로 환자를 실어 나르고 구급차를 탄다. 구급차 안에서도 환자 상태를 지속해서 확인하고 흔들리는 구급차에서는 긴장감이 감돈다. 구급차 뒤에 모습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흔들리는 내 몸을 고정하느라 환자를 처치하느라 정신이 없다. 심폐소생술 하며 10분 뒤 병원으로 도착한다. 환자를 응급실로 인계하고 난 뒤 응급처치 기록하고 구급차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면 1건의 구급 출동이 끝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전화로 환자 상태를 물어보니 의식 회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은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돌아오는 중에도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을 한다.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현장으로 도착했는데 이미 심한 외상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보았다.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한다고 해도 매번 사람들을 소생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험난한 재난 상황, 응급상황에서 소방관이 되면 스트레스 관리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소방서 실습 이외에도 병원 실습 나갔다. 방학 동안에는 1달에서 2달간 실습을 한다. 번갈아 가면서 소방서와 병원에 실습한다. 응급실을 돌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두통과 복통, 오심(울렁거림) 증상이 나타났다. 예전처럼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계열)를 먹었다. 약을 먹을 때는 통증이 줄어들었으나 통증 간격은 짧아졌고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통증이 올 때마다 약을 먹으며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