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고 싶지만
2002년 5월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신 날이다.
나는 그날 아침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 아침 식사, 잘 챙겨 드시고 학교 다녀올게요.”이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니 올 때 사다 달라고 하셨다.
“오는 길에 사고 올게요. 아버지.”
아버지는 간경화와 간암으로 투병 중이셨고 복수가 차서 몸이 아프셨다.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의 말이 맴돌았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과외수업을 하는 중에 핸드폰에는 부재중 5번이 찍혀있었다. 어머니께서 다급하게 병원으로 오라는 말만 남기시고 끊으셨다.
과외가 끝나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로 갔는데 어머니와 동생, 친척분들이 중환자실 입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 계셨다. 사고 온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팽개쳐진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버지를 진찰하신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아버지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네요.”“오늘을 넘기기가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침까지 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었고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는데요.”
어머니께서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오전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숨도 안 쉬고 의식을 잃으셨고 다급하게 119로 전화해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왔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있었지?’
나는 응급구조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학교에서 심폐소생술을 배워 교수님과 강의도 나가는 데 정작 필요할 때 아버지를 도울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다.
‘조금만 일찍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깨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실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슬펐다.
아버지는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계셨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고비를 넘기고 계셨다. 배는 이미 복수로 찰 때까지 차서 아침에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환자의 모습이 아버지라니 믿기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사를 오고 가며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눈물 줄줄 흘렀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서 물이 줄줄 새는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던 아이스크림도 사 왔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 말이다. 말씀하셨을 때 바로 사다 드릴 걸 후회가 남았다. 눈물이 흘렀지만, 마음껏 울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해.’
‘나는 장녀이고 어머니와 동생이 있으니,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에서 슬퍼만 할 수 없어.’라며 다그치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삼일장을 치러야 했고 친척분들이 오셔서 사람들을 어떻게 맞아들여야 하는지 장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친구들과 교수님이 오셔서 위로를 해주셨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나를 채찍질하며 내가 살아가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낸 이후 나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아르바이트와 도서관, 집만을 오가며 공부하고 돈을 모으고, 장학금을 타며 어머니께 최대한 부담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두 배 이상 공부해야 했고 주위에 친구들이 나보고 “넌 참 독한 것 같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절실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퍼할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