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체계 수립이 필요한 때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지난 17일, 우연히 피디수첩에서 '골든 타임: 위기의 소아청소년과'란 제목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방송에 출연한 한 엄마는 아이가 아파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지방에서는 아이의 병을 치료해 줄 의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이 아픈 아이를 데리고 새벽부터 운전해서 서울로 오거나 전날 병원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대기를 해야 진료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당일 접수로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았고 예약 진료받거나 대기해서 진료가 취소되는 경우가 아니면 반나절을 대기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병원 주변에서 월세방을 얻어서 지내야 하거나 다니던 일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직장에서 일해야 했기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고 외벌이로 병원비를 유지하려면 긴 한숨만 나온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방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런 일이 적지 않다. 아이가 갑자기 코가 빨개지고 구토를 하고 열이나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려고 했지만, 병원에선 받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구급대원이 다섯 군데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를 받아줄 병원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서 진료 시간을 단축했기 때문이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소방관으로 일했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을 서울 한복판에서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고 답답했다. 아픈 아이와 함께 병원 진료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 일부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응급의료체계 문제 때문이었다. 응급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이 없어서 실제로 구급차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이야기도 간간이 전해진다.
우리는 이대로 응급의료체계 붕괴 상황을 뒷짐 지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복구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경증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 시스템화해야 한다. 119구급차를 치킨 배달 부르듯 부르는 게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이용하는 국민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실제로 과거 소방관으로 일했을 때 택시 부를 비용이 아까워 구급차를 부르고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탔던 환자가 있었다. 그리고는 병원 응급실 입구 도착한 후 몸이 아팠던 게 괜찮아졌다고 유유히 걸어서 집에 가는 환자도 있었다.
증상을 보고 병원으로 이송하지만, 점점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는 수는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경증 환자가 구급차 이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응급 환자가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119를 유료화는 단계적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소아청소년과 이외에 산부인과, 응급의료과 붕괴도 이미 진행 중이다. 의대를 진학하는 학생 수를 늘리는 것 또한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특히 왜 병원에서 의료진이 유출되는지 원인을 찾아 해결점을 찾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의사 수가 적어 다른 과보다 힘들 가능성이 적지 않고 성인과 달리 의사소통이 원활하기 어려운 소아청소년과 환자를 진료해야 할 때면 스트레스는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은 수의 의료진에게 헌신만을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다. 떠나가는 의료진에게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다른 과의 혜택 격차를 줄인다면 인력수급은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한다.
셋째, 전폭적인 재원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소아 의료진을 모아 한 곳에서 집중 진료, 타 병원의 소아과 전문의의 당직화, 인력 확보를 위한 충분한 재원 투자도 필요하다. 병원 응급실, 시스템에 익숙한 전문의가 주말, 또는 밤 특정 시간대 일하도록 하는 방법 등도 필요하다.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적재적소에 의료인력을 활용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의료진과 정부와의 대립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서로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지 말고 의견을 나누고 해결점을 찾아 서로 도움이 되는 응급의료체계 수립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