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의 기억
고백하자면,
나는 8살 때 조폭마누라였다.
남자애들이 괴롭힌다는 여자애들의 말을 듣고
남자아이들을 때려주던 조폭마누라였다.
그 당시엔 호감을 주먹으로 표현했나 싶을 정도로
감정표현에 그렇게나 서툴렀다.
엄마는 우리 아파트 상가 세탁소에서 일했다.
1층에서 엄마! 하고 부르면
2층 창문이 열리며
엄마가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게 너무 좋았다.
7살이던 동생이
엄마가 세탁소에서 일하는 것을
창피해하자,
나는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당당하게 엄마 세탁소로 향했다.
엄마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혼자서 커튼도 곧잘 만들고,
세일하는 식재료를 잔뜩 사서 푸짐하게
세끼를 차려주었고,
아빠와 새벽 2시 40분에 일어나
신문배달, 청소 다 하고도
세탁소도 가는,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 중
부끄러워하는 손글씨로 정성스레 적은
‘버티컬 청소합니다.’
조그맣게 전단지를 만들어
문방구에서 여러 장 복사하고,
예쁘게 오려 테이프를 붙이고,
아파트 맨 꼭대기 층부터 붙이며
계단 내려오던 날.
기다리던 전화가 오면,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같이 집으로 가서 버티컬을 떼고,
우리 집 욕조에 담그고 둘이서 신나게
버티칼을 밟았다.
때 구정물이 쭈룩쭈룩 나올수록 입꼬리는 올라갔다.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나랑 자주 싸우던 남자애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고.
순간 가슴이 쿵 떨어졌다.
우리 엄마를 손가락질받게 만들고,
또다시 창피하게,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나였어?
나는 힘든 우리 엄마를 웃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 엄마를 또다시 슬프게 만들 수는 없어.
그것도 감히 내가 말이야.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다른 사람처럼 지냈다.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세탁소를 다니던 나는
친한 친구 한 명과 조용히 다녔고,
학교에서는 말수 없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이 시켜줄 때까지
발표를 하겠다며 손을 번쩍번쩍 들던 아이는
선생님께 귓속말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나 살리고 싶었다.
우리 엄마를..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