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두 지켜줄 거야!

그럼 나는?

by 보리

나는 어릴 때부터

책임지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책임이 아닌

짊어짐인 줄을 몰랐다.


어린 날엔 불행한 부모님을 구원하고 싶었고,

작고 여린 내 동생도 구원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쓰러져 죽어버려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 성공, 다이어트, 부자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는 돈은 단 1원도 벌벌 떨었고,

유통기한 가까운 음식을 세일가에 샀다며 좋아했지만,

가족들과 남을 위한 돈은 아까운 줄 몰랐다.


나에게는 매일같이 더 성장하라고 채찍질하고 욕하고

실수하면 두배로 벌을 주면서,

남에게는 관대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런 너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때론 진심 없는 위로가 나조차도 진심으로 느껴질 만큼.

그게 공감이고 착한 나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인생의 최단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얼른 짊어진 것들을 내려놓으려면 최단거리를 찾아서

빠르게 성공을 이루고 모두 내려놓으리라.

그럼 나에겐 천국이 찾아올 거니까.라고.


그럴수록 삶은

나를 한층 더 깜깜한 미로 속으로 걷어찼다.

그곳은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암흑 같은 곳이었다.

이전의 삶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깜깜했다.


가진 것을 다 잃은 내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릴 때,

내 안의 내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아우성을 칠 때.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내가 원하던 것을 사기 시작했다.

비싼 음식, 영양제, 비싼 옷, 여행..


가족들은 잠시 모른 체 했다.

내가 없으면 안 굴러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이지 모든 세상은 잘 굴러갔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결핍 안에 모든 것을 가둔 채 살아왔음을.

그리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것들을 짊어지고

스스로를 연민하며 사는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음을.


내가 무너진 채 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속박이자 결핍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이제는 누구보다 나에게 솔직하게.

더욱더 나로서 살리라.

서툴러도 나를 사랑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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