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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Feb 16. 2022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 (1)

지난 40년의 KBO리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야구팀이 세계적인 강호인 쿠바를 꺾고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하고 대회에 참가했던 국가대표팀은 이후 다시 없을 신데렐라와도 같은 스토리를 써 내려간 뒤 마침내 세계 최강 쿠바를 누르고 염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의 선전은 소규모 개방 경제국으로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시킨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안겨 주었고, 이로 인해 과거 수년 간 침체기를 겪고 있던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그 해 야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 구단의 관계자들은 밀려드는 관객에 함박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다급히 올림픽 금메달 전시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을 기획하여 시행하였지만, 급작스레 변모한 환경과 추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직관에 의존하여 마케팅을 이어나갔고, 관객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좁고 불편한 자리에 억지로 몸을 우겨 넣은 채, 생소한 브랜드의 스낵과 라면 등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뜨거운 감동을 안겨줬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소중히 두 눈에 담았다.


쏟아지는 햇볕을 가릴 수 있는 그늘 한 줌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은 당시의 트렌드를 쫓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가슴 속의 끼와 열정을 분출시킬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고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함께 추억을 빚어 나갈 수 있는 훌륭한 데이트 장소였으며 가족 단위 고객들에게는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멋진 놀이공원이자 휴식처였고, 직장인들에게는 시원한 맥주 한 컵과 함께 하루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관객들의 요구를 충실히 수용하고자 일부 구단들은 그간의 행태를 벗어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했는데, 낯설지만 의욕 넘쳤던 이들의 행보는 이후 업계 내 경쟁 구단 및 타 종목 구단들의 본보기가 되어 널리 벤치마킹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시장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국내 유수의 기업들은 야구단과의 공동 프로모션 추진을 통해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쏟아 부었고, 이러한 상황에 고무된 언론과 학계에서는 향후 프로야구계가 장밋빛 꽃 길 만을 걸을 것이란 희망 섞인 기사와 연구 결과들을 앞다퉈 내놓았으며, KBO리그 사무국은 이를 근거로 신생 구단의 창단을 독려함은 물론 기존 회원사들이 연고지로 삼고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새로운 야구장을 지어줄 것을 강력히 건의하였다.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충실히 기여하고 있는 프로야구라는 콘텐츠의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고려한다면 이는 마땅히 관철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후 KBO리그의 구성원들이 염원하던 신생 9, 10구단 창단은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치열한 유치 경쟁 속에 순조롭게 이루어졌고(창원, 수원), 프로야구는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8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물론 이는 9, 10구단 창단에 따른 경기 수의 확대(팀 당 128경기 →144경기)가 낳은 자연스러운 산술적 결과였지만 내심 이를 자신들의 업적으로 내세워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싶었던 KBO는 꿈의 1,000만 관객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적 연구보고서를 출간함과 동시에 프로야구는 향후 무한히 성장하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자신감을 만방에 내비쳤다. 그리고 프로야구가 창출하는 경제효과와 고용유발 효과를 다시금 강조하며 연고지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재차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KBO리그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同)업계에 속한 10개 소속 회원사 구단들마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목적과 지향점이 제각각이었다는 것이었다. “야구장을 기반으로 프로야구 흥행업을 전문적으로 영위하는 기업”이라는 업태는 같았지만 누군가에게 있어 프로야구단은 “모기업과 계열사를 위한 홍보 수단”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사회공헌활동(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약칭 CSR)의 일환”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향후의 존속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윤(Profit)을 창출해야만 하는 비즈니스”였다. 게다가 이들 구단들에 상당 액수의 지원금을 대주며 이들이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지탱할 수 있게끔 조력해주는 각자의 모기업 이하 계열사들은 서로의 업계 내에서 경쟁자인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이해가 치열하게 얽혀 있던 까닭에 KBO가 업계의 지속 성장을 위한 신(新) 성장 동력임을 표방하며 야심 만만하게 추진했던 통합 마케팅 사업(KBO의 자회사인 KBOP가 주관)은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었고 각 구단들은 자신들이 직접 투자하며 키워 온 기득권을 쉽게 내 놓으려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KBOP의 존재와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타이틀 스폰서 및 방송 중계권 대리 계약 위주). 그리고, 이윤의 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합심하여 지속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해외의 선진 프로야구리그(Major League Baseball)와는 달리 KBO리그 내의 각 구단들은 동(同)업계이면서도 이(異)업계인 듯한 기묘한 상황을 자의와 타의에 의해 지속시켜 나가면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 촉발시킨 또 한 번의 영광스런 성장의 기세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위기의 신호는 이미 지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짧은 임기 보장으로 인해 단기 성과 창출에 내몰린 일부 전문경영인들의 선수 확보 경쟁이 촉발시킨 FA선수 몸값 급등 사태는 각 구단들의 운영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창단 이래 자생력을 단 한 번도 갖추지 못했던 각 구단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일부 구단은 자본 잠식 상황을 타파하고자 모기업과 계열사의 조력으로 유상 증자 실시). 여기에 더불어 밴드왜건 효과의 덕을 톡톡히 봤던 흥행 또한 이를 불변의 추세로 착각했던 각 구단들의 안일한 대처와 수 많은 경쟁 콘텐츠의 등장으로 인해 그 기세가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했고 9, 10구단의 창단과 경기 수의 확대가 만들어 낸 800만 관중의 시대도 2년 연속 관객 감소라는 참담한 결과 속에 짧은 영광만을 남긴 채 종언을 고하고 있다. 


<KBO리그 입장객 현황 (1982년~2019년)>

불분명한 정체성,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분명 창출하고는 있으되 해 마다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 그 결과물이 너무나도 아쉽기만 한 한국의 프로야구 산업. 악화된 모기업의 사정으로 인해 시즌 종료 후 매각 또는 해체의 위기에 내몰린 전통의 명문 구단의 안타까운 사정과 COVID-19의 시대를 맞아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는 주식회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무(無)관중 경기라는 혹독한 겨울 시기를 겪고 있는 국내 프로야구 산업이 지난 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어떤 행보를 걸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바로 한국형 프로야구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구현에 있다. 


-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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