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참혹했던 지난 2년과는 달리 올 시즌에는 100% 관중 입장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다시금 팬들로 야구장이 들썩였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 산업은 사실 완연한 하향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난 3년 간의 총 입장 관중 수 추이 뿐만 아니라 제한적 관중 입장이 허용됐던 지난 시즌, 그 몇 안되는 좌석을 모두 채우지 못했던 사실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방 모 구단의 경우, 최대 13,0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했음에도 겨우 800여 명의 관중 만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이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취식 및 육성응원 금지라는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좌석점유율이 7%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은 우리 프로야구 산업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각종 매체들의 전년 대비 시청률 하락 추세는 새삼 언급드릴 필요도 없겠죠. 지금까지는 이 모든 것을 손쉽게 COVID-19 탓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이제 Post COVID-19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우리는 예상했던 것 이상의 참혹한(?) 상황을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
1) 최근 3년 간 총 입장 관중 수 추이 : (2017년) 840만 → (2018년) 807만 → (2019년) 728만 (2020~2021년은 COVID-19로 파행 운영) 2) 2019 시즌 총 입장 관중 수 7,286,008명, 좌석점유율 약 47.3%(정상 좌석 수 기준) 3) 2021 시즌 총 입장 관중 수 1,228,489명, 좌석점유율 약 8.0%(정상 좌석 수 기준)
4) 2021 시즌 시청률 : (전반기) 0.775% (후반기) 0.543%
산업을 영위함에 있어 '진부화'는 피할 수 없는 예정지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들은 예외 없이 '도입-성장-성숙-쇠퇴'의 흐름을 겪습니다.
이들 중 재빠르게 변화의 흐름에 올라 타 또 다른 '고객 지향'의 새로운 가치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주체들은 다시 한 번 '도입-성장-성숙-쇠퇴'의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그 생명력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빨랫줄 같은 선형을 그리며 성장하는 산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위에 언급 드린 비선형의 흐름을 성공적으로 반복시키면서 영속에 대한 도전을 이어 나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KBO리그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1982년 리그가 창설된 이래 4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생명력을 더하기는 커녕 상식적이지 못한 '모기업 지원금'에만 의존해 오다 마침내 '도입-성장-성숙-쇠퇴' 사이클의 끝자락에 접어 든 느낌입니다.
엄연한 ‘주식회사’임에도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대신 그저 모기업 오너(Owner)의 'Pet Sports'로서의 역할 수행에 안주하고자 했던 기형적인 산업 행태… 이러한 상황의 반복과 연속은 프로야구를 찾는 고객(팬)들은 물론이거니와 종국에 이르러 선 리그 내 구성원 모두와 관계자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아픔을 안기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삼미슈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해태타이거즈, SK와이번스(이상 구단 매각)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유니콘스(이상 구단 해체). 우리는 이들 구단들의 명멸(明滅)을 똑똑히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아픔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프로야구 산업은 기어를 확실히 바꿔 끼워야 합니다. ‘홍보수단’이나 ‘사회공헌수단’으로 머물러 있다간 리그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기형적 수익-비용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 또한 기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태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생력을 갖춘 ‘비즈니스’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맹과 구단은 자생력 확보에 중추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문이 어느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체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야구 비즈니스는 크게 ‘입장권-매점-상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B2C 부문과 ‘야구장광고-프로모션-방송중계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B2B 부문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들 중 구단 자생력 확보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문은 ‘좌석수X객단가’로 매출이 한정되는 B2C 부문이 아닌, 협상에 따라 가치를 더하고 조정할 수 있는 B2B 부문입니다. 방송중계권료 뿐만 아니라 요 근래 다시 쟁점화 되고 있는 잠실야구장 광고 수익 배분 이슈 또한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연맹과 구단은 야구장 광고 수익을 마땅히 확보할 수 있는 ‘합당한 논리’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몇 년 전, 부산시에서 주최한 야구장 신축 관련 토론회에 객(客)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여러 토론 주제들 중 야구장 운영권 관련 사안 또한 주요하게 다뤄졌었는데 당시 KBO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내세우며 토론 참석자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구단이 지역 사회를 위한 ‘여가 선용’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재원 확보의 차원에서 야구장의 운영권(광고 수익 등)을 구단에 부여하는 것이 옳다"
저는 이러한 주장이 참으로 궁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고 즐길 것이 턱 없이 부족했던 80~90년대에는 프로야구가 주요한 ‘여가 선용’의 수단으로 선택되었고 또 팬들 또한 넘쳐났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가 선용 수단이 흘러 넘치는 까닭에 이제 더 이상 프로야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당 수의 지역사회 주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지어진 야구장을 특정 대기업이 ‘특별한 이유(또는 직접 와 닿는 기여)’없이 독점하는 상황을 원치 않습니다. 아니, 그러한 관심조차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곧 지역 연고를 표방하고 있는 구단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가 가늘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지방자치단체도 야구장 운영권을 할애해 달라는 구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야구장의 주인인 지역민(=유권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타당한 명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로야구 산업이 진정한 비즈니스로서 다시금 부흥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선 우선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 강화’에 힘써야 됩니다.
이를 위해 구단은 ‘여가 선용의 장 제공’이라는 본연의 가치 제공 이외에 현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고객 가치’를 추가로 발굴하여 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 고리는 시즌 종료 후 선행 및 기부 활동을 추가한다고 해서 쉽사리 두터워지진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성을 담아 차고 넘칠 만큼 시행해도 부족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기존의 틀을 깬 외연의 확장… 그리고 연고 지역민들을 위한 새로운 고객 가치의 제공.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방법론이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 저는 우선 야구장이라는 물리적 환경(하드웨어)과 야구경기라는 콘텐츠(소프트웨어)의 활용에 주목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즉, 이들을 활용하여 지역민들의 주요 pain point(해결하고 싶은 과제)인 ‘취업’ 증진과 이를 돕는 ‘교육’에 구단이 적극 기여하자는 것이죠.
연 중 72일 동안 일 최대 3만명 가까이 움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한 야구장은 그 자체가 생생한 비즈니스 교육장이자 테스트 베드입니다. 이를 활용하여 제가 이끌어내고 싶은 모델(가칭 프로야구산업 아카데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현업에서의 경험이 생생히 반영된 전문적, 체계적 이론 교육 실시
2)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수행하며 내실 다지기
3) 교육 수료자는 지역 사회 내 구단 홍보대사로 위촉 & 지속 관리 * 우수 성과자는 채용 및 취업 알선, 창업 희망 시 구단 명의로 지분 참여 또는 협업 계약 체결 등 후원
4)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면 이후 지역 사회 내 대학과 기업 참여 독려 * 커리큘럼 및 테스트 베드 확장, 협업 진행 등
5) 선순환 모델 구축 후 지방자치단체 참여 유도 및 지원 확보 *확보된 재원은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재투자
6) 선순환 모델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창구로 병행 활용
* 구단 역량 강화 도모
프로야구산업 아카데미 개념도 (오프라인 플랫폼)
이렇듯 야구 뿐만 아니라 야구 외적으로도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프로야구단은 분명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튼튼히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단의 야구장 운영권 확보 또한 궁극적으론 지역민들의 pain point 해결에 기여하는 형태로 승화, 발전될 수 있으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 및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협조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테구요. 야구에 야구 외적인 가치를 더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본격적으로 기여하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서의 프로야구단(야구장)이라니… 상상 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경험의 원추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읽은 것의 10%, 들은 것의 20%, 본 것의 30%, 말하고 적은 것의 70%, 그리고 실제 경험한 것의 90%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비즈니스로의 대전환을 위한 지역사회와의 연결 고리 강화 차원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산업의 지속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인재를 기르고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효과적인 커리큘럼과 테스트 베드를 기반으로 한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운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Post COVID-19 시대의 프로야구 산업은 어떠한 모습을 띄게 될까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이 KBO리그의 발전을 지향하는 다채로운 담론을 주고 받을 때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