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스포츠 캐스터가 진행하는 모 유튜브 방송에서 몇몇 프로야구단의 매각 의향 타진 관련 소식을 전했나 봅니다. 이로 인해 엠팍(MLBPark)을 비롯한 여러 야구 커뮤니티에 관련 이야기가 넘쳐나는군요.
아무래도 지난 2021년 1월에 있었던 SK와이번스의 전격 매각 사건(?)의 여파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계 2위의 위용을 자랑하는 굴지의 대기업 집단인 SK가 스포테인먼트로 명성을 떨치던 프로야구단을 하루 아침에 매각해 버린 엄청난 사건...
이로 인해 팬들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영원히 존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또렷하게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SK그룹 입장에서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해야 할 의의(Why)가 없었기에 그러한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철거되는 SK와이번스의 간판들
사실 지금까지 KBO리그에서는 수 많은 구단들이 명멸을 거듭해 왔습니다.
삼미슈퍼스타즈(타사 매각)→청보핀토스(타사 매각)→태평양돌핀스(타사 매각)→현대유니콘스(구단 해체)로 이어지는 인천 연고 프로팀들의 잔혹사와 전북 지역 최초의 프로야구팀이었던 쌍방울레이더스(구단 해체), 그리고 최강 왕조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해태타이거즈(타사 매각)와 SSG랜더스로 간판을 바꿔 단 SK와이번스(타사 매각)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기억되는 가슴 아린 역사임에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까닭에서인지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도 어제처럼 (매각 또는 해체를 향하는) 같은 실수를 쉼 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몇 프로야구단이 매각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저도 복수의 루트를 통해 익히 전해들은 바 있습니다. 독자 생존이 어려운 까닭에 매년 400~500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쏟아 부을 수 밖에 없는 프로야구단의 활용 방안이 마땅치 않다면 이의 매각을 적극 고려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도 상식적인 의사 결정일 것입니다.)
제가 K리그 축구산업 아카데미 등 프로스포츠 산업 관련 강의를 나갈 때마다 항상, 그리고 제일 먼저 강조하는 사실은 바로 프로야구단(&프로축구단)은 ‘주식회사’라는 것입니다.
구단주가 거들먹거리며 마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놀 요량으로 운영하는 팻 스포츠(Pet Sports)가 아닌 이상, ‘주식회사’인 프로야구단은 고객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가치(Value)를 유효 적절하게 생산해 내고 또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함으로써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자생의 기반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만약, 이를 능히 해내지 못하여 결국 심각한 누적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자본마저 (완전)잠식되게 된다면 이들은 시장에서 도태되어 사라지거나 이를 필요로 하는 타 기업에 매각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순리입니다.
프로스포츠 구단의 형태 - 주식회사
주식회사의 프로세스와 지향점
그러나,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단들은 태생적 모순이 잉태한 기형적 산업 구조(매년 아낌없이 뿌려지는 모기업의 지원금 등)에 기대어 ‘주식회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대신 지역사회의 공공재인 경기장을 점유한 채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과거의 그릇된 행태 만을 답습해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규직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일부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프로야구 산업이란 원래 이런 것이기에 앞으로도 이런 형태로 유지될 것이란 ‘귀납의 오류’에 푹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사태를 지켜봤을 것임에도…)
프로야구단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KBO리그를 덮치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들에게는 낭만을, 국민들에게는 여가 선용을’ 이라는 KBO리그 출범 당시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보고 즐길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프로야구가 훌륭한 여가 선용의 장이자 모기업들의 홍보 또는 사회공헌의 장으로 기능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정이 다릅니다.
오프라인, 온라인 할 것 없이 보고 즐길 것이 넘쳐납니다.
'이제는 고객의 시간을 누가 더 많이 점유하느냐의 싸움이다' 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라는 허울과 과거의 영광이라는 망령에 사로 잡힌 채,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존재 의의'를 정립하지 못하는 한, KBO리그 내 모든 구단들은 언제든 매각 또는 해체라는 종착역과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지만 이는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때 '신세계 그룹의 본업(리테일)과 프로야구 비즈니스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겠다'라는 일성으로 KBO리그에 뛰어든 정용진 구단주의 SSG랜더스는 ‘프로야구단의 새로운 존재 의의’라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신세계 그룹의 의뢰를 받아 뉴스룸을 통해 게재한 SSG랜더스 관련 칼럼 네 편을 소개 드립니다.
(불특정 다수의)여가 선용의 장 제공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모기업과 고객 모두에게 성공적으로 가치(Value)를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프로야구단'의 모습을 지향하며 작성한 글 들입니다. 이를 앞으로 SSG랜더스가 따라 줄 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위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의 공공재인 경기장을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야구단이 지니고 있는 잠재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제가 요즘 심취해 있는 연구 과제는 바로 ‘하이브리드형 프로야구단(&프로축구단)’ 입니다. 이는 경기장이라는 거대한 그릇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여러 방안(스포츠 경기라는 핵심콘텐츠+여러 부가콘텐츠 및 서비스 등)을 동원하여 불러 모은 뒤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구성원 상호 간의 연결 고리를 강화해 나가고, 이를 또 다시 구단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ESG경영 포함)’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면 ‘존재 의의’ 부재로 매각을 고려하고 있는 기존 구단들도 다시 한 번 프로스포츠 산업의 가치와 의의를 되새겨보게 될 것입니다.
온갖 부정적 소식이 난무하는 것이 작금의 KBO리그의 상황이지만, 고객 가치를 중심에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면 분명 변화하는 시대상에 부합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을 위한 일은 이제 그만둡시다.
그리고 고객의 pain point 공략에 광적으로 달려듭시다.
Change or Die, Change to Live.
*참고로 400~500억으로 할 수 있는 (프로야구단 운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홍보 활동(혹은 타겟 마케팅)과 사회 공헌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프로야구단의 존재 의의가 '모기업 홍보' 또는 '사회 공헌'에 있다는 주장은 과거에나 통용되었을 법한 케케묵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