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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Feb 16. 2022

프로야구의 사회적가치 (4)

지난 40년의 KBO리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완결편)

800만 관중이 낳은 허상


SK와 롯데 양 구단의 전례 없는 파격적인 시도에 모든 관계자와 언론들은 주목했고, 프로야구는 바야흐로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관련 뉴스와 기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프로야구의 팬인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높다란 담장 안의 관중석은 매 경기 매진에 가까울 만큼 들어찼고, 9구단과 10구단이 창원과 수원을 연고지로 삼아 연이어 창단되는 등 당시 프로야구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물론 여가 선용을 위한 대표적인 프로스포츠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호황의 이면에선 위기의 신호가 지속적으로 감지되고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각 분야에서의 파트너사들의 이탈이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홍보해야만 하는 일반 기업들에게 있어 최적의 자원 배분과 집행은 매우 중요하고도 예민한 문제였다. 따라서 이들은 트렌드를 분석하여 소비자가 몰릴 것이라 예상되는 곳을 찾아낸 뒤 그 곳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스마트 폰으로 상징되는 IT기술의 발전이 촉발시킨 급격한 변화는 프로야구가 아닌 온라인 매체 쪽으로 그들의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과거의 구태를 못 버리고 전문성을 기하겠다는 미명 하에 대부분의 비즈니스 및 마케팅 활동을 타인의 손(외부 대행사)에 내맡긴 채 안주하고 있던 일부 구단들은 이러한 급변하는 양상마저 수동적인 태도로 받아들였다.


밴드왜건 효과로 인해 유입되었던 라이트 유저들의 이탈도 심각한 문제였다. 처음엔 모든 것이 놀랍고 새로웠을지라도 해를 거듭함에도 별 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던 볼 거리와 즐길 거리는 더 이상 이들에게 있어 한정된 여가 시간을 투자할 만큼 매력적인 요소로 인식되지 않았다. 또한 유년 시절부터 게임 등 다양한 경쟁력 있는 콘텐츠와 오랜 시간을 보내 온 MZ세대들에게 있어서도 프로야구는 그저 부모님 세대들이나 즐기는 고리타분한 콘텐츠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연고지 내 모든 지역민들이 프로야구의 팬일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깨뜨린 실체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광주KIA챔피언스필드의 장기 사용권을 놓고 촉발된 KBO와 구단, 그리고 시민단체 사이의 갈등이었다. 당시 KBO와 KIA구단은 언제나처럼 지역민들의 여가선용을 위한 장을 마련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이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악한 것이었다. 


“시민들 대부분은 프로야구에 관심이 없어요.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은 공공시설물인 운동장(야구장)은 시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공공 복리를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기업이 운동장(야구장)을 독점 사용하면서 수익 사업을 하겠다고요? 그것도 무려 25년씩이나?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시민들의 소중한 권리를 앗아가는 겁니까?” (당시 시민단체 관계자의 발언)


800만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프로야구를 인지하고 또 좋아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이 빚은 참담한 결과를 두고 일부 뜻 있는 관계자들은 변화하는 시대를 쫓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또 주장하였으나, 불행히도 이들은 리그를 주도하는 지위(계층)가 아니었다. 이후 프로야구는 2018~2019년 2년 연속으로 큰 폭의 관객 감소를 기록하며 목표로 했던 1,000만 관중의 시대를 여는 대신 800만 관중 시대의 종언이라는 슬픈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 운영권 분쟁 경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 구현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살펴 본 바대로 프로야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나름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해오고 있다. 프로야구 흥행업이라는 업태의 본질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모기업의 홍보 수단 –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 – 비즈니스 모델’로 지속적으로 변모(혹은 혼재)해왔고, 각 시기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여가 선용의 장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직접적인 공헌 및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확보에 기여하며 경제 및 고용 유발효과를 일으키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한 때의 주어진 성공에 쉬이 안주한 까닭에 오늘날 프로야구는 또 다시 관객이 극적으로 감소하는 위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과거엔 IMF 외환위기라는 돌발 악재와 국내에서 개최된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의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의 위기는 타 콘텐츠 대비 경쟁력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운영 비용은 증가하는데 정작 사람들에겐 외면 받는 프로야구.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된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KBO리그를 위시한 프로야구 산업계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 도입을 통한 신(新) 활로 개척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 구현과 지역 사회의 반향을 고려한다면 우선 프로야구라는 업(業)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야구 경기 진행에 중점을 두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대국적인 관점으로 시야를 전환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일 최대 3만여 명에 이르는 지역민이 한 곳에 모여 3~4시간을 함께 보내는 오프라인 공간(또는 거대한 장터)이 연 간 72일이나 운영되는 곳은 사실상 야구 경기장이 유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프로야구단이 앞장 서서 이 곳 경기장을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변모시켜 나가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다. 


일례로 지역민들 모두의 공통 관심사라고 볼 수 있는 교육, 그리고 이를 통한 직접 채용 및 취업 &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프로야구단이 중심이 되어 경기장을 테스트 베드로 삼아 유상 운영(비즈니스 모델)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장을 적극 활용한 내실 있는 교육은 구단과 산업을 위한 양질의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개연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구단은 기존의 채용 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지역 출신의 검증된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지분 참여, 계약 체결 등). 이러한 선순환의 고리가 성공적으로 형성되면 지역 내 대학과 기업에서도 분명 관심을 보일 것이고 이들이 경기장이라는 장(場)을 중심으로 활발히 상호 교류하게 된다면 분명 기존의 프로야구가 제공할 수 없었던,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곁들여 진다면 지역사회의 어떤 이가 프로야구단의 새로운 정체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 구현의 방법 중 하나이다.


<프로야구산업 아카데미가 지향하는 선순환 개념도>


Change or Die, Change to Live. 


이제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프로야구가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테지만 그 구현 방법만큼은 반드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기에 놓인 오늘날의 프로야구가 명심해야 할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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