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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Feb 16. 2022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 (3)

지난 40년의 KBO리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서의 프로야구


수 많은 언론사들에 의해 매일 다양한 형태의 뉴스와 기사로 다뤄지는 덕분에 프로야구는 무척 도드라지고, 또 그럴 듯 해 보이는 사업으로 외부에 인지되고 있었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全) 구단 공히 누적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일부 구단의 경우 자본까지 잠식되는 등 이익(Profit)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로서의 프로야구단은 이미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투입하며 마치 하나의 전통이자 관습이고 또 의무인 양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던 대기업의 입장에서 해체라는 버튼을 누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비즈니스로서의 가치 구현에는 실패하고 있었지만,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그리고 지역민들의 여가 선용의 장으로서의 기능과 자긍심 고취 등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순기능이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순기능이 모기업의 사업 목적에 직접적으로 부합되는 것이었다면 프로야구단 운영을 훌륭한 사전 투자로 평가할 수 있었겠지만 애당초 한국야구선수권대회는 정권의 강권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도출된 순기능들은 비자발적 동기에서 파생된 것이었기에 모기업의 입장에선 이에 대한 객관적 가치 평가가 쉽지 않았다.


이렇듯 지금껏 고수해왔던 모기업의 홍보 수단으로서의 프로야구단의 가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모기업의 오너들은 주주들에게 프로야구단 운영 유지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또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정부의 강권에 의한 것이라는 사유는 민주화를 표방하고 있는 정권이 들어선 이래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에 이들은 위에 언급한 당위성의 근거로 ‘사회공헌활동’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꺼내 들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의 토대가 되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임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기능한다는 것이 여러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에 오늘날 수 많은 기업들은 별도의 예산을 배정하여 다양한 형태로 사회공헌활동을 이행하고자 한다. 


프로야구를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꺼내든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들에게는 낭만을 국민들에게는 여가 선용을!”이라는 초창기 캐치프레이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프로야구의 업(業)의 본질은 여가 선용의 장(場) 제공을 통한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공공복리(公共福利) 제공에 있으므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어엿한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누적 적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윤 관점에서의 표현일 뿐이며 이를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투자액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모기업의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사실상 소멸된 상황 하에서 매년 1백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감내해가며 구성원 및 관계자들의 일자리를 유지시키고 인근 상권 활성화를 비롯한 경제 및 고용유발 효과를 창출하며, 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것만으로도 프로야구단은 어엿한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반 대중들의 관심에서 프로야구가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프로야구단의 사회공헌으로서의 효용이 쇠락해감을 의미했다.


IMF 외환위기와 2002년 월드컵을 겪으면서 프로야구는 급속히 팬을 잃어갔다. 스타 선수들의 경기력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이들의 활약을 대외적으로 어필하고 팬들을 경기장으로 새롭게 이끌 마케팅 기획력은 턱 없이 부족했다. 적자 행진 속에서도 절대 망하지 않는 기형적 산업 구조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구성원들의 인식, 그리고 옅디 옅은 야구 저변 또한 적지 않은 악재로 작용했다. 이는 스스로가 이윤을 창출해야지만 생존할 수 있는 주식회사임을 망각한 채 오로지 모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는 제한적 역할 만을 수행하려 했던 프로야구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였다. 만약 이들이 자신 있게 주장했던 (프로야구단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가 지역민들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이었다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목도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사회적 가치란 것은 그저 일부 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옛날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관중들로 가득했던 야구장은 어느 사이엔가 빛 바래져만 가는 빈 객석들만 가득한 채, 선수들의 고함소리만 쩌렁 쩌렁 울리는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1경기 최소 관중 기록(54명, 1999년 10월 7일, 전주구장)을 포함한 역대 최소관중 1~20위 기록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텅 빈 야구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축구를 즐기는 어린이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다시 찾아 온 프로야구의 봄 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금메달을 극적인 스토리로 획득하면서 올림픽의 영웅들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야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별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객석이 가득 들어차는 상황이 전개되자 시장의 흥행 기류를 감지했던 일부 구단들은 이러한 추세를 이어나가고자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전략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존의 모기업 사회공헌활동(CSR)의 일환으로서의 기능을 보다 정교히 다듬어 극치를 이루는 것과 이러한 차원을 뛰어 넘어 주식회사답게 상품과 서비스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수익(Profit)을 성공적으로 창출해내는 비즈니스 모델로 변신하는 것으로 양분되었다. 전자의 선두주자는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를 표방했던 SK와이번스였고, 후자의 선두주자는 한국형 프로스포츠 비즈니스를 표방했던 롯데자이언츠였다. 


경기장 시설에 많은 투자를 하며 야구장의 테마파크화를 주도했던 SK와이번스는 프로야구단의 사회적 가치를 “Fan First! Happy Baseball!”에서 찾고자 했다. 이들의 방향성은 아래의 인터뷰 발췌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포테인먼트의 초창기 컨셉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프로야구 시장 확대’였다. 당시 프로야구 시장은 팬 서비스 부족으로 인한 지속적인 관중 감소, 그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 및 구단 가치 하락 등으로 촉발된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있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팬 가치를 구단 운영의 중심에 두고 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시간 점유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영화관, 테마파크 등의 타 산업군들과 소비자들의 여가 시간을 놓고 경쟁하고자 했고, 여기에 감성과 문화를 더해 야구장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부담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 나가고자 했다. 바비큐 존, 패밀리 존, 프렌들리 존 등의 특성화 좌석은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전 SK와이번스 대표이사 신영철)


롯데자이언츠의 시장에 대한 접근 방법과 프로야구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은 SK와이번스의 그것과는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이들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 낳은 호황을 KBO리그가 안고 있는 태생적 모순을 깨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이에 1차적인 목표를 모기업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고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으로 삼았다. 자사의 상황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뒤 이를 원활히 가동시켜 자금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구단이 영속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단의 영속이 가능하다면 꾸준한 일자리 창출과 수익에 따른 세금의 납부를 비롯한 경제 및 고용유발효과 그리고 롯데자이언츠 만이 창출할 수 있는 편익(benefit)의 제공을 통해 팬들은 물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롯데자이언츠는 SK와이번스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한정된 여가 시간을 이들의 needs와 wants의 충족, 그리고 pain을 해결해주는 다각도의 비즈니스를 통해 점유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마케팅 조직을 사업1담당(B2C 비즈니스 부문, 최규덕 팀장), 사업2담당(B2B 비즈니스 부문, 김경민 팀장)으로 세분화하고 전문 인력을 보충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나갔는데, 당시 B2B부문을 총괄하던 김경민 팀장이 중심이 되어 국내 최초로 선보인 '백네트 뒤 LED 광고보드', '그라운드페인팅 광고' 그리고 '익사이팅 존' 등은 오늘날 시장의 표준이 되어 현재 수 많은 구단들이 널리 활용 중이며, 당시 구축했던 KBO리그를 대표하는 열광적인 응원 문화 또한 오늘날 전설처럼 널리 회자되고 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음)


<전. 롯데자이언츠 김경민 팀장이 추구했던 비즈니스 모델의 Cause-and-Effect 다이어그램>


- 프로야구의 사회적 가치(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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