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오일장

by 조희정

전북 순창군 복흥면 소재지에서는 지금도 오일장이 열린다. 매월 3일과 8일이 들어있는 날이다. 아내의 고향도 복흥인지라 자주 가는 편이다. 연말이면 장모님이 해주는 김치를 가지러 다녀오곤 한다. 결혼 이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은 연례행사다. 작년에는 시골에서 오일장이 열리는 골목을 아내와 다녀왔다.

우연한 방문이지만 마침 장날이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꽤 많다. 시장에 들어서면서, 소품을 팔던 아버지의 좌판이 펼쳐진 듯했다. 장사하는 아버지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이고, 당시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옷 가게 옆 자락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의 집도, 옷이며 장신구 등을 팔던 점포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언제 열렸는지 모를 만큼 굳게 잠긴 건물 사이로 아버지가 좌판을 펼쳤던 장소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아내와 함께 거리를 스치면서 "이곳이 아버지가 장사했던 곳이야. 어릴 때라 당신은 몰랐을 거야. 그렇지?" 내 물음에, 아내는 "엄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장인·장모님과 이미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나 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 소매로 되팔면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날인가에 상당히 높은 자릿값을 내고, 좌판을 인수했다.


복흥 오일장이 열리기 전날이면, 가끔 광주나 담양의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오셨다. 사 오신 물건을 재포장하거나, 가격표를 붙이는 일 등으로 밤늦게까지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선명하다. 주로 실과 바늘, 머리핀, 장갑 등 소품을 취급하셨다.

시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친구도 사귀셨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담배를 즐겼다. 좌판 옆에서 담배를 물고서, 오가는 분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셨다. 처음에는 사람 대하기가 어려웠겠지만, 시간이 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요령을 터득하신 듯하다. 제법 큰 돈을 가져오는 날도 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만큼의 벌이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로 장사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을 때도 여전히 장사를 하셨다. 아버지 나이 오십 세, 남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까지 좌판을 계속 열었다. 형과 동생들의 학업 비용을 비롯하여 써야 할 돈이 많았기에 장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아버지는 "복흥의 오일장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평생을 농부로 보냈고 천직이라 여겼던 어느 날,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 농사뿐이 아님을 알았다. 장사를 통해 돈을 벌 수 있고, 원활한 인간관계의 요령도, 어떤 말과 행동이 단골로 이어지는지도 체득했다.

본래 성격이 유순하고 쾌활했지만,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유연해졌다. 낯선 이라도 한 번의 만남에서 친근감과 신뢰감이 들게 했다. 이런 연유로 아버지의 오일장은 인천으로 이주한 후, 건설 현장 잡부로서 일감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의 오일장 장사는 어린 필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우선, 초·중학교에 다니던 때 장날이면 든든함이 저절로 스며들었다. 혹여라도 곤경에 처할 상황이라면, 학교에서 지척인 시장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커다란 뒷배로 여겼다.


둘째는 손님에게 반갑고 친근하게 던지는 인사나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 아버지는 가족이 아닌 다른 분에게도 친근하고 겸손하게 대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을 대할 때 아버지처럼 친절해 보자고 다짐했다.


셋째, 오일장에서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감 그 자체였다.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위대했다. 소품의 용도와 편리성을 빠르고 강한 어조로 설파하던 모습, 그리고 미소 띤 얼굴이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생각해 보니, 성인이 된 후 직장에서 동료들을 대할 때, 상대를 배려하며 편안한 자세로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자신감이 그 출발지였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곳, 찬 바람이 부는 12월이면 다시 찾고 싶은 복흥의 오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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