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공기는 무겁고 햇살은 뜨겁습니다. 구름이 잠시 잠시 햇빛을 가려주지만 바람은 잠잠하네요. 여름 느낌이 듭니다. 아니, 이제 여름인가요?
산수국은 이제 피어나는군요. 귀여운 모습의 작은 꽃봉오리들이 터지며 보라색 꽃술이 튀어나옵니다. 활짝 핀 작은 꽃들은 자주색 별 같기도 합니다. 점점 피어나는 작은 꽃들과 바깥쪽의 분홍색 헛꽃들이 멋진 모습입니다. 왠지 커다란 분홍색 리본을 매단 예쁜 아가씨를 보는 듯합니다.
열매가 하얗게 익어가는 흰 말채나무의 가지가 바람을 따라 낮게 살랑거립니다. 매끈한 느낌의 열매는 별 모양이었던 하얀 꽃을 닮은 듯하네요. 왠지 만져보고 싶어 집니다. 초록이 점점 밝아지며 연두색이 되다가 다시 하얗게 익어가는군요. 점점 변해가는 색감이 신비한 느낌입니다. 꽃도 예뻤지만 왠지 하얀 진주처럼 익어가는 열매도 사랑스러운 느낌입니다.
그늘 쪽에서 남천의 꽃이 피어납니다. 아이보리 색의 작은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노란 꽃술이 나오고 있군요. 가는 줄기에 가득한 초록의 잎새와 하얀 꽃잎 그리고 노란 꽃술이 산뜻합니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그렇게 하나 둘 피어납니다. 나무 위를 초록의 매실이 튼실하게 커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 여름 같은 유월이네요. 잠시 걸었는데 땀이 나는군요. 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SNS에서 친구가 보여주는 설악산의 폭포 동영상을 바라봅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하네요. 오래전에 설악산 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갔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잠겨있던 하얀 발도 생각나는군요.
잠시 조선 화가 이경윤의 고사탁족도를 찾아봅니다. 높은 선비께서 나무 밑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계시네요. 너무 더우 신지 옷을 풀어헤치셨는데 배가 좀 나오셨군요. 그런데 그분의 시선은 덥석 머리 아이가 들고 있는 멋진 주전자에 가있습니다. 왠지 술일 듯합니다. 청주일까요 아니면 탁주일까요? 생각해 보니 높은 선비들도 더운 여름에는 이렇게 탁족을 하고 천렵도 하고 약주도 한잔하며 보내셨겠네요.
어린 시절에 형들을 따라 시냇가에 천렵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물장구를 치며 놀던 생각도 나고요. 유리 어항으로 작은 물고기를 잡기도 했었네요. 그때의 매운탕이 다시 맛보고 싶어 지는군요.
조금은 더운 날씨지만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차갑던 계곡물도 생각나고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던 기억도 떠올려보니 시원해지는 듯도 합니다. 마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처럼 다가오는 기억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어떤 기억은 편안하게 언덕을 넘어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렇게 다가오기도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