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흐린 여름날의 아침은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미세한 습기를 담고 있지만 상쾌한 느낌의 바람은 산책자에게도 피어나는 꽃들에게도 불어오네요. 오늘은 무더위에 잔뜩 달구어진 대지가 잠시 쉬어가게 될까요? 날씨는 햇빛이 뜨겁게 쪼이기도 하고, 구름이 끼어 흐리기도 하고, 비도 오고,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우리를 더욱 생기 있게 해주는 듯도 합니다.
초록이 짙어지는 여름의 언덕에는 산수국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연한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여있는 꽃송이마다 마치 색색의 나비들이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듯하네요. 잎이 변한 꽃잎은 나비들의 시선을 끌려는 전략일까요? 하지만 그녀들은 나비는 어쩔지 몰라도 산책자를 유혹하는 데는 성공한 듯합니다. 잠시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 사이를 날아봅니다.
연두색의 아주 작은 꽃들은 연보라 또는 파랑과 자주색 등의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고 섞이면서 송골송골 피어나네요. 길게 튀어나온 꽃술들은 서로 누가 큰가를 자랑하는 듯도 합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벌들은 제법 바빠 보이는군요.
수국의 작은 연두색의 꽃이 점점 분홍색으로 짙어지며 피어납니다. 뽀얀 그 모습은 마치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기 싫어하는 사랑스러운 잠꾸러기 같군요. 연한 파란색의 수국도 피었네요. 산들바람을 맞으니 차분한 느낌도 듭니다. 분홍색의 꽃도 파란색 꽃도 다들 아름답네요. 그런데 왠지 분홍의 꽃이 달콤한 밀어 같다면 파란 꽃은 현명한 조언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조금 다른 모습의 수국도 만납니다. 연두와 분홍과 보라가 섞여있는 꽃잎은 별 모양이네요. 그래서 별수국인가 봅니다. 하늘에 별이 있다면 땅에는 별수국이 있는 것일까요? 그 위로 한 송이 노란 금계국이 하늘거리며 내려옵니다. 별수국과 함께 노란 별이 되는 듯도 합니다.
촉촉한 습기가 배어있는 언덕 아래에는 꽃창포가 피어있습니다. 노란 포인트를 찍은 진한 자주색의 꽃이 긴 초록 잎과 함께 선명한 아침을 느끼게 해 줍니다. 활짝 핀 꽃이 아침 바람에 가볍게 흔들거립니다. 그저 편안한 아침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초록의 줄기에서는 또 다른 꽃봉오리가 올라오는군요.
구름은 끼었지만 날씨는 선선하고 습기를 머금었지만 바람은 상쾌합니다.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들을 바라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야외 카페에 들릅니다. 카페의 화분에서 산들바람을 맞고 있는 서양 톱풀은 왠지 느긋해 보입니다. 아이보리색의 꽃봉오리가 점점 분홍으로 변하고 이제 진한 분홍으로 활짝 피어나네요. 느린 호흡을 해보니 향긋한 허브향이 가득 날아오는군요.
하얀 두 개의 반점이 마치 어린아이의 돋아나는 이 같은 진한 보라색 로벨리아 꽃들도 산들바람을 느끼는가 봅니다. 화분에 가득 피어있는 작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는데 은은한 보라색 향기가 하늘로 흩어지는 듯하네요.
산들바람을 느끼며 꽃을 보고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셔봅니다. 왠지 황제가 부럽지 않은 기분이 드는군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1악장을 들으니 정말 그렇네요. 맑고 힘찬 피아노 소리가 상쾌하게 들려오고 꽃들의 미소는 주변에 가득하니까요. 오늘은 왠지 멀리 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냥 커피를 마시며 황제의 나머지 악장을 마저 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