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내립니다. 하늘 가득 쏟아지는 눈은 조용히 내려와 겨울나무에 그리고 땅에 쌓여 갑니다. 세상이 점점 하얘지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창밖으로 한없이 내리는 눈을 보다가 문득 산책을 나서봅니다. 우산 위에서는 흰 눈이 소록소록 쌓여가고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는 사박사박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아직 빨갛게 남아있는 낙상홍의 열매에는 하얀 눈꽃이 피었습니다. 별 모양의 눈은 마치 하얀 털모자 같기도 하네요. 비록 많이 쭈글쭈글해졌지만 흰 눈을 맞고 있는 붉은 열매에서는 뭔가 신비한 미소가 느껴집니다. 붉은 열매에 내려앉은 하얀 눈의 결정이 반짝이는 듯합니다. 아직 탄력이 남아있는 빨간 열매는 눈을 맞으니 더욱 정열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눈이 녹으며 그녀의 뜨거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빨간 매자도 더욱 뜨거운 느낌입니다. 갸름한 얼굴에 내리는 눈은 벌써 녹아가고 그녀는 촉촉한 미소를 보여줍니다. 비록 색깔은 검붉어졌지만 아직 탄력을 자랑하고 있는 열매의 힘찬 율동도 느껴봅니다. 깊은 주름 사이에 쌓여가던 흰 눈의 결정이 번져 나가는 듯합니다. 깊은 하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한동안 바라봅니다.
쌓여가는 눈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하얀 발자국이 따라오는군요. 그런데 눈은 남천의 붉은 열매에도 쌓여갑니다. 가득 쌓여있는 흰 눈 사이로 얼굴을 내민 빨간 열매가 더욱 선명해 보입니다. 붉은 잎에도 하얀 눈이 가득한데 빨간 열매의 미소는 더욱 붉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짝 흔들리는 잎과 열매의 미소는 상쾌한 멜로디가 되어가네요.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손은 굳어오지만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이렇게 쌓여가는 눈은 이 계절에만 느껴볼 수 있으니까요. 눈은 나무수국의 마른 꽃에도 쌓여있습니다. 마치 한 겨울의 나비들을 보는 듯도 합니다. 지난 계절의 꽃송이는 그 모습 그대로 갈색으로 남아있는데 흰 눈이 쌓이며 다시 꽃이 피는 듯합니다 하얀 눈을 맞으며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하얀 겨울의 멜로디를 들어봅니다.
날씨는 약간 어두운 느낌이지만 눈이 쌓이는 대지는 하얗게 변해갑니다. 그런데 화살나무의 가는 가지에는 안쪽에 붉은 색깔이 남아있는 열매가 살며시 떨고 있습니다. 둥글게 펼쳐져 있는 열매의 껍질 아래에는 살짝 벌어진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붉은 색감을 간직하고서요. 진한 초록색이 남아있는 영산홍의 잎도 하얗게 변해갑니다. 가늘고 흰 솜털 위에 흰 눈이 쌓여 더욱 보송보송한 느낌이 듭니다.
아그배나무의 마른 가지에도, 아직 남아있는 갈색의 잎에도 그리고 주름진 열매에도 흰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붉은 열매에서는 나지막하면서도 뜨거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듯합니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겨울의 멜로디는 차가우면서도 상쾌하고 또 달콤한 느낌이 듭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겨울의 멜로디는 점점 커져가네요. 점점 따뜻해져 가기도 하고요.
한 겨울에도 꿋꿋하게 달려있는 야광나무의 검붉은 열매에도 흰 눈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그저 조용히 눈을 맞으며 살짝 주름진 미소를 짓고 있군요. 그런데 정원의 벤치에는 하얀 눈 오리 두 마리가 앉아있습니다. 눈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려는 듯한 오리에는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던 어떤 소녀의 웃음이 담겨있네요.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커피는 아직 따뜻하네요.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과 함께 차이콥스키의 꽃의 왈츠를 들어봅니다. 하얀 눈이 쌓여가는 어느 겨울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