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차분히 "나"를 보는 날
날씨가 이상하지만
걷다가 크게 다칠것 같아서 엄마와 가벼운 산책을 했다
엄마가 사는 집에 와서, 차분히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10대, 20대는 왜그리 급했을까
나를 알기 이전에, 나의 전공 ,나의 진로를 결정 하였다.
그만큼 갈지자를 그렸고, 표면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결과에 만족 스럽지 못했다.
장애를 얻고나서, 더 심해진것 같다.
그래서 아픔도 컸고,상처도 크게 받았다.
만2세가 되었구나 인정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할수 있는것은
머리를 사용하는일, 듣는것 말하는것 ,
그리고 느리지만, 기술과 기계에 도움으로 확대해서 글을 보고, 글을
읽을수 있다.
하지만,중요한 일이 있을때는 타인에 도움을 받아야 하고,
과거처럼 칠판글씨를 깔끔하게 쓰지 못하고,
선없는 종이가 아니면, 글쓰는게 부담스럽게 되었다.
그래도 할수있는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년간 살면서 굳은살 박힌 오른손 세손가락, 욕창 있는듯이 굳은살
박힌 엉덩이 그것들이 말해주는 나의 지식을 얻기위한 절대적인 노력은
절대로 어디가는것이 아니였다.
장애로 패널티는 분명히 많다.
하지만, 이것으로 내 삶을 망가트리거나,내삶을 끝낼 이유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장애인 편익에 대한 다양한 형태에 일을 하고 싶고,
그 과정 에서 고용주가 된다면, 성장이 느리다는 평가를 감수하고도
30~40%는 다양한 형태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고용하고,
자신이 의미있는 사람임을 느끼며 사는데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장애에 단점이 있듯이, 모든 장애는 일반인 보다 뛰어난 감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같이 발달시켜, 당당한 사회 일원으로 보호의
대상이 아닌, 같은 사회 구성원이 되는 일들을 하고싶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편견도, 분명히 사라질것이다.
나는 소외된 이들에 대하여, 대부분 시민들에 태도가 진정한 그나라의
국격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노력해도, 장애로 인해, 못하는 신체적 장애가 있지만, 나는
그것이 티가 나지 않게 해주는 교통수단,행정,교육등 제도가 충분히
자리를 잡아야 하고, 한국도 경제 발전 만큼 사회 구성원 모두에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수 있는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고 확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