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텝 루틴을 채워나가면서, 나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무엇인가 하나는 하는구나 라는 작디작은 자신감이
하루하루 쌓이는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의 10대는 운이 많이 따랐던것 같다.
20살 부터 도주치상 사고로 중증 시야 장애를 얻기전 까지는
일,공부,돈 이것만 생각하고 살았다.
장애와 코로나 너무 힘든 2년가량의 시간 이였다.
그 시간동안 울지 않았다는것 ,대신 온몸이 사고의 정신적,신체적
흔적에 반응 했다.
법과 국제 금융과 의약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였지.
평등과 인권 그리고 장애,장애보조기구와 의약품 이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얻고, 그냥 회복 하고,장애,장해 판정을 받는데,
1년 반 가량 병원에서 살았다.
죽을 의지조차 생기지 않던, 산송장 , 그자체 였다.
그렇게 놓치고 살았던 "일상" 이라는 "내 삶의 기본"을
완전히 놓치고 살았다.
사고이후, 장애를 얻고 나는 "나"가 없었다.
Ptsd 증상에 대한, 엄청난 공포.
시야 결손 진행에 대한, 엄청난 불안감.
그것을 이기는척을 하려고, 무리한 보폭으로
걸었다. 아니, 애써 노력해서 버텼다.
그게 끈기라 생각했고, 나의 몸과 마음은 망가지는데도,
자기 위안을 삼으며 장애인 직업재활 훈련을 버텼다.
하루에 50,60알 매끼당 17~20개정도 약을 먹었다.
약때문에,30kg 가량 살도 찌고, 간도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각종 후유증들이 뒤딸았다.
Ptsd증상들이 온몸으로 표현이 되어도 버텼다.
그것을 못버티면,나는 모든것이 무너질거라고 확신했다.
장애를 얻은 후 부터, 나는 아직 까지 평균적으로 우울하다.
교수님의 입원 치료 결정으로 입원했다.
교수님은 목표가 분명하셨던것 같고 ,말하지 않으셔도
그 목표를 주치의 선생님들을 통하여, 피부로 느꼈다.
타과 진료,검사,치료,시술을 같이 했다.
10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것 마저도 나에게 큰 보폭에 일상 이였다.
그렇게 지나다가 교수님 에게 제안 했다.
일단,힘들더라도, 약을 줄이고 싶다.
자신감,자존감이 무너졌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세상 장애를 느끼고,
Ptsd는 나에게 따라 다닌다.
죽을 생각이 없었다. 뻔뻔한 직,간접 가해자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에게 내가 죽는것은 그들이 그나마 지어야 하는
법적 책임이 사라지고, 나는 정말 티끌이 될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된 small step 치료 였다.
3개의 루틴을 주셨다.
이것쯤 이야 했지만, 3개중 1개 지킨 날이 5일중 1일 뿐이였다.
정말 많은 생각과 반성을 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3개중 1개는 매일 지키자 여겼다.
그런데, 1개를 하고 나니 ,2개를 하지 뭐, 이렇게 고생 했는데 3개
해보자로 평균 2개 후반을 이루었다.
교수님과 주치의 선생님께서 조금 보폭을 넓혀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퇴원하기전 1주는 1일 빼고는 5개 루틴을 해냈다.
퇴원후, 몇일 안되었지만...
스텝을 조금씩 넓혀보고 있고, 그 스텝을 완벽하게 다 채우지는
못해도 절반이상은 평범하게 채웠다.
오늘을 마치며, 글을 남기는 이유는
Small step부터 차근차근 쌓아간 루틴은 내 삶의 "기본" 이였구나
느꼈다.
그래서 확신한다.
나는 꾸준히 보폭을 넓히기도, 좁히기도 하며
죽이되든, 밥이 되든 끈기있게 끝까지 건강하게 가보고 싶다.
무엇을 이룬다 라는 의미 보다는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기분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것 같다.
나는 인생의 기본을 잊고, 응용을 하려고만 했던것 같다.
다시는 그렇게 미련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 이다.
필요하다면, 교수님의 치료 권유를 적극적 으로 따를것 이다.
언젠가는 다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수 있겠지 희망을 가져본다.
그렇게 나는 글을 마무리 하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며, 잠을 청해본다.
그날이 오기 전 까지, 내가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그곳이 성당이라
여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