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mall step
죽이되든,밥이되든 프로젝트를 통해 루틴을 쌓아가면서 알아가는것
나는 나에 대하여 무심했던 사람이다.
10대때도, 20대 때도...
20대에 사고로 시각(시야중증) 장애를 겪으면서,
더 무심해졌다.
타인들에 배려와 도움이 차별만큼
수치스럽게 느꼈었다.
아직도 장애 판정이 난지 만1년 조금 넘었고,
증상을 느낀지 만2년이 안되었으니,
두렵고, 힘들고, 불안하고, 예민한것이 당연한것 이였다.
나는 성리학적 사회에서 철저히 교육을 받았다.
그 이론이 당연하다 여기던 사람이다.
공부,입신양명을 신성시 했고, 그중 하나라도,
타인과 차이 나면 , 패배자 라고 확신 했다.
장애 전, 남들이 가지않은 타국들은 보고,중심지
에서 그들이 집중하는 산업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으며, 한국과 전혀 다른 형태의 제도들 앞에서
처음에는 엄청난 경계심을 가졌다.
하지만,그들을 알아가면서,
내가 정말 좁은 프리즘 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구나 반성했다.
그러한 반성에도 불구하고,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전공을 버리지 못했다.
미래가 정해진 전공이라는 사실,그 전공은 이 사회에서 탈선을 의미했다.
나는 평생 주변에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당당하게 밝은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 이지만,철저히 성리학 사회에 익숙한 평범한
대한민국에 20대 청년 한 사람 이였다.
주변 시선과 보이지 않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트랙에서 벗어나는게 두려웠다.
그 와중에, 도주치상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너무 힘들었다.
트랙 에서, 탈선하고 , 더 이상 미래는 없다고 확신했다.
수사하는 경찰, 수사관 기소권이 있는 검사까지도
그렇게 조롱하듯 걱정 하면서, 자신이 할 일들중 성과과
되지 않는 일이라 여겨 종결하기 바빴던것을 보며,
나는 이제 이 사회에 끝났구나 여겼다.
이것은 너무 힘든일 이였다.
숨쉬는것이 무겁고,거칠고,괴로웠다.
살기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애써 버티는것만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라 확신했다.
불편한 눈 으로
태블릿PC에 오디오북, 전자책을 최대로 확대해가며 힘들게 읽었다.
정말 다양하게 많이 읽었다.아니 글자를 구분하고,문맥을 유추했다.
머리에 남는것은 "나는 왜 공부를 하지?"
"나에게 성공은 무엇일까?" 라는 진지한 생각들 이였다.
대학을 가기전 했어야 하는 생각이였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
한국나이 29살에,한국나이 27살 말에 사고로 장애를
얻은 나에게 정말 어려운 질문들 이였고,
정답이나 해답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Small step을 시작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동안 노출된 순간들을 무의식적 한것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터벅터벅 일자 병동을 터벅터벅 삐딱삐딱 걸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노 였다.
내가 아는 모든 신들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여기고,저주를 퍼부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였고, 그안에서 가해자들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공간을 공존 할수 없는 원수 그 자체 였다.
하루하루 small step을 쌓으면서,
자그마한 루틴들이 적립되듯이 쌓이면서,
습관이 형성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내린 나에게 맞는
주관적인 해답은 나의 삶에서 "나"를 지키는 일이다.
타인,집단,국가,세대등 획일화된 성리학 관념 이란 프리즘 에서,
생기는 무심한 위선적인 차별과 철저히 이용을 위해,
계획되고,조직화된 차별로부터
나를 물리적으로든,제도적으로든"나"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장애를 가진 나로써,
나를 지키는것은 일단, 장애와 장해 그리고 후유증 을 인정하는것이
우선 이라고 판단했다.
현상 유지와 후유증등을 최소화로 조절 하는 일이
최선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건강을 잃으면 나를 어떤 형태로든 ,방법으로든 스스로를 지킬수 없었다.
그리고, 돈과 지식 그리고 지식을 넘어선 끈기,투지로 얻은
나만의 노하우, 지혜를 얻는것 이였다.
그리고, 과감히 선택과 집중이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를 건강하고,자유롭고,
선택할 심적 시공간,자산적 여유를 얻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성장에 즐거움을 채우며 내가 사랑하는 분야를
자의로든,타의로든 강제로 내려놓지 않기 위해서 배우는것 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한것이 그리 많지 않고, 삶이 단순한 사람이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선택과 집중을 무의식적으로 했던것 같다.
그랬던 내가 사고로 장애들,장해들 그리고 후유증을 얻은이후,
절망 속 에서 철저히 "나"를 잃는 과정에서
절망적인 상황들과 매일 겪는 고통에 경험들이 철저히 나의 단점을
무의식적 으로 극대화 시켰다.
그런데, 나는 나를 지킬 만큼 꽤 괜찮은 능력을
가진 사람 이였다.
자의로든,타의로든 오랫동안 그것만 집중한것들로
나는 나를 무의식 속에서 그나마 나를 지킬수 있었다.
장애로 그것들을 계속 하는것에,
편견이란 패널티가 존재하고,
타인에 배려와 도움을 필요한 상황이면 받아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하려면, 자산이 아닌,
자본이 필요함을 확신했다.
하지만, 정확히 뭘 배우고,얻고 싶은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단,작은 루틴이 쌓여, 좋은 습관들이 나의 생활에 채워지는것이
우선 이였다.
그래서 나는 만보와 재활치료,재활운동 ,그리고기본적인것은
알았지만 막상 직접 사용하라면 식은땀 흘리는 외국어 듣기,말하기
그리고 그런 전문적인 전공책과 최신 논문을 소리로만 듣는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소한 한국어,영어,숫자,기호등의 점자를 분명히 익히는것이 우선이였다.
그나마, 보이는 시력도 얼마나 허락될지 모르는 상황 이였다.
그리고, 약들로 인해, 나타난 장해와 후유증들에 피해를 최소화하는것이였다.
그것을 위해 나는 루틴중 1만보 걷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1시간 여정도 걷는 터벅터벅 걷는 걸음들에 나를 무의식적으로
"나"를 인지하고, 느끼고, 알아가는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더위로 한번에 못할때도 있지만,
그래도 1만보는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한국어 점자는 단어정도는 쓸줄 안다.
하지만, 문장은 쓰지도 못하고, 단어도 띄어쓰기나
아직 낯선 약자가 튀어나오면 읽지 못한다.
정말 제대로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꾸준히 해오고, 꾸준히 공부하고, 애증이 있는
분야들의 기초적인 자격증 부터 면허증 까지
허락 되는한,하나하나 준비하고 따고 싶다.
기계와 기술은 그 어떤 세기 보다
빠르게 변한다.
나는 아날로그 부터 디지털을 넘어 IT를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관심이 없었지...
나는 그 기술,기계에 변화의 중심들이 있는 공간에서
노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한다.
나에게 반드시 기회가 온다.
그리고 건강과 언어 그리고 논리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는 그 기회들인 장애,장해를 대처할
기술들과 기계들의 발전에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가 될것 이라는 확신이였다.
건강,이분야 선두를 달리는 국가들의 언어들의 기승전결 논리적
비약이나, 문제가 최소화된 분명하고 정확한 나의 생각,필요한부분등을
말하기,듣기는 중요하다.
사실, 시각 (시야중증)장애를 겪은
나에게, 건강 다음 으로 중요한것은 점자를 쓰고,읽고, 사용하는것이다.
그래야만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의 역사의 소용돌이 에서
나는 수혜자가 되고 싶다.
절대적 피해자는 그만하고 싶다.
노력들이 쌓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 싶다.
그무엇을 아직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기초적인것들을 체화를 넘어 습관으로 형성 하는게
우선 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다 보면 배움의 터전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동료들과 스승님들과 격식없이 소통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하는 이가 되고 싶다.
이미 "망했다" 라고, 사회적 프리즘, 편견 그리고 경험들 속 에서
매일 눈뜰때 마다 지옥을 느낀다.
장애는 무의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2년이 다 되어가도, 눈뜰때마다 매일 아침
나는 지옥을 느낀다.
그안에서 좋은 습관 형성에
가장 도움되는 나의 장점인 끈기와 집중하는 능력이다.
나는 이미 지옥이고,
내게 얼마나 배워서 풍요롭고, 다채로운 삶을 느낄
순간이 허락된지 모른다.
그래서 실패 하더라도,좌절 하더라도 집중한것을
끝까지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작은것 부터
행동한다.
그런 노력이 나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이 내편 이기를 내가 욕하던,
아는 모든 절대자, 절대자를
보좌하는 존재들 에게 치열하게 기도를 한다
논어,맹자,노자 그리고 주역이 나에게
큰힘이 되고 있다.
쇼펜하우어,니체 그리고 베토벤의 삶도 그러하였다.
나는 확신한다.
행동해서, 망하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선례를 후배와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다시 일어나서 끝내, 끈기로 해낸다면, 좋은 선례가 될것이다.
이미 나는 모든것이 처음이고, 만2살도 안된 신생아와 같다.
보폭 크기와 시간 그리고 시선과 차별을 너무 의식하지 않도록
장애를 인지하고,인정하며 노력 해야겠다.
이런,패널티는 나에게 정해진 상수 이기에 나는 이를 변화시킬 능력이
없고, 확률도 낮다.
나는 조금 더 높은 확률이 확신 되는것에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동원해 투자할것이다.
신이 일부러 열어둔, 미지수는 언제나,사람 이라고 확신한다.
장애라는 패널티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나도 나를 믿어봐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 지극히 평범한 small step을 단하나의 루틴을
하더라도 칭찬할 계획이다.
그렇게 행동하다보면 작든,크든 긍정적 변화가 야기될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