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집에 가족사진
나에게는 제대로 된 가족 사진이 없다.
가족사진을 찍은적은 많았지만,
한명 한명 지워 나가며, 제대로 돈 가족 사진이 없다.
부모님이 서로 다른 길로 걷는다.
나도 가족인데...
나는 결론이 다 나고 알았다. 그런 내게 가족사진이 없다.
나는 중립을 지킴 으로써 내가 살던 집도 떠나야 했다.
입학금이 없어, 친가 외가 어른 분들께 채무,채권 관련 각서와
나의 계획을 써서 들고 갔다. 단,한명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런 내게 가족사진이 없다.
어두웠던 외가 분위기가 힘들어, 도망치듯 결혼한 어머니.
야망 가득했던 노총각 이였던 아버지.
서로의 목적에 의해, 나는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가족 사진이 없다.
어머니를 모시며, 잘살거라는 확신으로
집을 빚없이 2채를 마련 하였다.
서로 존중할수 있는 사람 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주었다.
가족은 사랑 만으로 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가족 사진은 없다.
덩그러니 남은 2채의 집, 유사암으로 수혈이 불가능 했던
어머니 불가피한 수술은 집을 1채 팔고, 집값 보다 많이 대출을
받아야 수술이 가능 했다. 불리한 모든 요소를 감내했다.
나에게 유일한 가족이 어머니 이기에 후회는 없었다.
수술동안 걱정 되었지만, 20대 뭐그리 바빴는지 가족 둘의 사진은 없었다.
엄마가 퇴원하자 말자, 처음으로 엄마 집에 반찬 받으러 주정차 구역에
비상등,안전벨트를 매고, 기다리는중에 도주치상 사고는 났다.
가해자는 도망쳤다. 그때 내게도 가족사진 하나 없었다.
엄마는 반찬 하나 더 챙겨주신다는 마음에 늦었다고
너무 힘들어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강한 스트레스로 인한 고도 난청과
뇌피질이 녹아내린 특이한 형태의 인지장애와 분노조절 장애를 진단 받으셨다.
그런 어머니께 선뜻 가족사진 이야기를 할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 사진이 없다.
장애이후,가난이 다가왔다.중증 장애인 에게 큰돈이 될 일들을 주지 않았다.
고객들이 능력은 알지만, 중증 시야 장애를 가져서 거래를 멈춘다는 말은
없었으나, 절반이상이 장애로 평가절하된 나를 떠났다.
그때도 나에게 가족사진이 없었다.
삶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부로, 엄마는 어머니 아버지 이자 나의 외조부님 부와 연금을 근거로 부양 의무자가 폐지 되었음에도,불구하고 가족 폐지 사유를
듣고 검증 받아야 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 이다.
가난으로 가족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치료비,재활훈련 하면,
정말 밥,김치,계란 뿐 이다. 두분이 갈라설때, 보증금 1원도 없어,
사우나 에서 눈치보며, 살았다. 그에 비해, 지금은 양반이다 여기지만...
나는 아직도 가족 사진이 없다.
1000번즈음 심사숙고 하여, 들어간 국가 위탁 시각장애인 직업재활 훈련
나는 최선을 다했다. 버텼다.장애유지와장애,장해로 인한 후유증으로
약이 하루에 50,60알 되어도 버텼다.
그런 힘든 순간에도 나에게는 엄마사진도, 가족사진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같은 인격체로 존중 안하는 강도높은 무례한 요구를 하는 동급생들이 있었다. 그들을 그저 피했다.
왜냐하면, 더 좋은 동급생,선배,선생님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이였다.
폭탄이 터졌다. 위탁한 공공기관, 위탁훈련기관은 사태를 은폐 축소 하고,
나를 퇴교 시키기 바빴다.
그런 날에 볼수 있는 가족사진, 엄마사진도 없었다.
피폐해진체 나는 적극적 치료에 전념하였다.
죽을 생각은 없지만, 행동할 의지는 없었다.
나는 영영 가족사진도, 엄마사진도 온전히 가진것 없이 하루하루 죽어가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가족사진이 없었다.
편찮으시고, 내가 중증 시야 장애를 얻고 사진 찍기 싫다고 하시는 어머니.
매일 설득중 이다. 엄마가 몸과 마음에 여유 있을때 같이 사진 찍기로 했다.
남들 다 있는 가족사진, 나는 그 가족사진을 온전히 가져본적이 없었다
나의 가족사는 요약해서, 빛좋은 개살구
나는 단 한번도,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가져본적이 없다.
이런 나의 꿈은 언제가 온전한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것 이다.
모든 순간 나의 소원 이였다.
그래서, 연필과 노트북 보다 분필을 더 많이 잡았다.
토가 나와도 그냥 했다. 그래도 나에게 가족사진은 허락되지 않았다.
파혼을 결정한 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발짝 양보도
할 생각이 없었다. 나와 그녀 관계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평생 후회할 말을 하고 끝내고 나는 웃으며,
일을하고, 유급이 결정되어도 일을 했다.
나는 화려한 빛 속에 광대였다.
그런 내가 볼 가족사진, 그녀의 사진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날은 평생 후회할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비겁하게 과감히 손을 놓을것 이다.
박수와 축복을 받으며, 꾸린 가정도 어려움이 많다.
나는 현재 내가족 어머니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나에게 평범한 가족사진은 허락되지 않는다.
언젠가 따뜻한 가정의 가족사진을 내 책상, 내지갑, 우리집에
걸어놓고 싶다.
죽는게 쉽다 느끼게 괴로울때가 장애 이후로, 늘었다.
Small step을 의지를 가지고 하루라는 순간을 루틴을 통해 쌓는다.
언젠가 나도 온전한 가족사진을 볼날이 오겠지 바랄뿐이다.
내가 루틴으로 습관을 형성 하려는 이유,
두번은 후회할 자신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는데 실패하는이유가 돈 ,장애 그리고 나에게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 건강상태라면...나는 두번 후회할것이고...
나는 영영 가족사진 없이 살아갈것 같다.
그 이유중 내가 노력 가능한 "돈" ,
장애가 있고 어머니 간병인을 고용해도 여유를 가질 만큼 "돈"
돈이 100개중 90개의 불편과 갈등을 해결 하는것 같다.
이 몸으로 그돈이 감당이 될까...
아버지 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에 나는 가족사진이 없는 운명인건가 생각하면서도,
따뜻한 가정의 가족사진은 나의 인생의 원칙이자 방향성 이다
가족사진
누구에게는 산소같이 평범하지만...
누구에게는 30년 가까이 노력해도 온전하게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