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많던 소녀 정자

by 한여름

정자의 아비는 대목수였다.

작은 시골마을의 소소한 집이나 짓는 목수가 아니라, 영남 이내가 이름만 대면 알아줄 정도로 솜씨가 정교한데다 꼼꼼해 주로 관공서를 짓거나 학교를 짓는 등 큰일에 쓰임하는 대목수였다.



특히 정자의 아비는 못을 쓰지 않고도 나무에 홈을 내어 끼워 맞추는 당시로써는 가장 까다롭다는 손기술을 가진 장인으로 전통가옥 보다는 학교나 관공서 등 주로 큰 건물을 짓는 대목수로 이름나 있었기에 없던 시절에도 다른 집들에 비해 비교적 살림살이가 넉넉한 편이었다.



한번은 소학교에 복도를 나무로 까는데 인부들이 작업을 마치면 정자의 아버는 양동이에 물을 가져다 복도에 냅다 쏟아 부으며 틈새가 벌어져 물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불호령을 칠 만큼 일에 빈틈 없었다.



그랬기에 워낙 솜씨 좋은 목수에다 일처리까지 까다롭게 완벽하다 영남이내 정평이 나 있었기에 정자의 아비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나라가 독립 되었을때, 국내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한국의 여러 장인들을 비교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본국으로 데려 가려했는데 정자의 아비는 나라와 고향을 등질 수 없다며 가난한 이땅에 남기를 택했다.



정자의 아비는 대목수로 활약하며 큰 공사가 있는 곳을 옮겨 다니며 일한 터라 또래에 비해 결혼이 많이 늦었고, 늦은 나이에 얻은 첫째 딸이라 정자를 무척이나 이뻐했다. 이에 반해 정자의 어미는 시골 유지의 딸로 엄격한 사대주의와 유교 교육을 받고 자란데다 결혼 후 남편이 목수 일로 집을 자주 비우는 사이 홀로 대식구를 건사하느라 바쁜 나머지 큰 딸인 정자를 호되게 가르치고 훈육했다.



정자의 아비는 아내가 자신의 몫까지 더해 정자를 가르치느라 호되게 훈육하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여러날 집을 비웠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때면, 가족들 몰래 정자가 좋아 하는 간식인 새콤달콤한 복숭아나 자두를 사서는 몸안에 숨기고 들어와 정자에게만 살며시 내밀곤 했다. 정자는 그런 아비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집을 비우면 아비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정자의 집 대문 안에는 아비가 깊이 파놓은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마음씨 좋고 인정 많은 정자의 아비는 아침이면 가장 먼저 맑은 우물을 하루 쓸양 만큼 넉넉히 퍼낸 뒤에 대문을 상시 열어 두게 했다. 마을에 우물이 없던 터라 마을 사람들이 아침마다 정자네로 와 먼저 물을 퍼간다음 기다렸다 제 아무리 많은 물을 길러가도 정자의 아비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대문 바로 앞에 있는 우물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또 있어 바깥문은 열어 두지만, 안쪽 문만은 꼭 닫아 놓고 집안 여인들을 보호했다.



일제치하 시절을 힘겹게 보냈고 이제막 6.25전쟁을 겪은 터라, 정자의 아비나 어미는 정자가 바깥으로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게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며 단속하는 터라 정자는 대문 밖을 잘 나가본적 없었다.



호기심 많고 꿈많던 그시절 소녀들에게도 유일하게 외출이 허락됐던 날은 정월 단오였다.



단오가되면 낮부터 시작한 쥐불놀이며 단오행사로 다른 집 아녀자들은 대부분 외출이 허락되어 밖으로 나다니는데, 정자의 어미는 단오 날에도 정자에게 외출을 허락치 않는 대신 바깥 대문과 가장 근접한 한쪽에 널판을 길게 놓아주고 순이어멈의 두 딸과 정자가 널을 뛰며 담장 밖으로 일년중 한번의 기회로 마을 잔치이자 정월 단오행사를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정자는 소학교를 다녀오면 책보를 풀자 마자 집안 일을 거들고, 저녁이 되면 호롱불을 켜놓고 수를 놓으면 밤을 보냈다.

그 시절에는 아무리 어린 여자아이라도 훗날 시집가 대부분은 자급자족해 살아야 했기에 살림살이를 위해 바느질만큼은 꼭 배웠야 했는데, 어릴적 자신이 바느질 한 것들은 훗날 시집갈 때 혼수가 되어 한복에 옷깃을 바꿔 달거나 한복 저고리에 장신구를 다는 등은 일상적인 가르침이었다.



정자는 제 어미를 닮아 어릴적부터 바느질 솜씨가 여간 좋지 않았다. 더우기 예쁜 것을 좋아했던 정자는 어미에게 부탁해 밋밋한 광목천을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도록 이부자리의 자투리 천이나 모양을 오려 줄것을 부탁해 밤이면 칠흑 같이 어둡던 방안에 오랫도록 호롱불을 켜놓고 훗날을 생각하며 수놓기에 몰두했다.



여즉 바깥으로 나가 놀이를 해본 적 없는 정자라 또래 사내들을 만나 본적이 없지만, 정자는 막연히 훗날 시집을 가게 되면 무엇보다 자신의 아비처럼 재주많고 똑똑한 사람을 베필로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정자는 막연히 시집을 가게되면 여러날 한땀 한땀 정성껏 수놓은 배갯잎이며, 커다란 천 이불보, 정성껏 수놓은 커텐이며 테이블보 등을 활용해 누구 못지 않게 아름다운 나만의 가정을 아름답게 꾸리리라 꿈꾸며 자랐다.



그러면서도, 만약 세상이 달라져 여자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정자는 한복 말고 멋진 양장을 빼입고 일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 10대 시절 정자가 수놓은 작품들, 족히 60년은 더 된 것으로 광목천에 손바느질로 수놓은 것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아들 동생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