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 발행 후 두 번째 글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전편 내용을 읽으신 분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나의 이야기면서, 그녀의 이야기이고,
시작하는 이야기면서 끝내는 이야기이다.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서 헤어지고 오는 그 첫 번째 이야기.
저 멀리 뉘엿뉘엿 지는 석양이 오늘따라 참 붉기도 하지.
그대로 멈춰 온 세상을 빨갛게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로 10월의 지는 태양이 그녀를 비춘다.
그녀는 노을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눈을 감으며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무거운 몸으로 추수를 끝내도 할 일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에 질세라 한숨도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숨쉬기가 버거워 나오는 숨인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자 나온 한숨인지 구분할 기운이 그녀에겐 없다.
시선아래 가슴보다 더 불룩하게 솟은 배는 오늘일지 내일일지 기약이 없다.
기약이 없는 이는 여기 또 있다.
그녀의 남편.
남편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의 시간을 그녀에게 맡겨버린 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늘 그랬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면 마무리를 하지 않고 사라지고 술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지는 뻔했다.
깊은 한숨이 그녀를 감싼다. 잠시 그 한숨에라도 기대어 쉬고 싶지만 엄마 손길이 필요한 첫째와 엄마 손길이 간절한 둘째를 위해서 힘든 몸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녀가 움직여야만 아이들이 산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들어간 부엌을 보니 부족한 세간살이가 꼭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올라오는 서글픔이 눈앞을 뿌옇게 가렸다.
누가 볼세라 쌀을 씻으며 쌀뜨물과 함께 눈물을 흘려보내는 그녀다.
사르르 아래 배가 아파온다.
마음이 아파서일까? 아니다, 그럼 낮에 일하며 급하게 먹은 점심이 탈이 났을까?
그것도 아니지.
그제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던 그녀의 하루가 스쳐 지나갔다.
땅땅하게 굳어 있는 배를 거칠어진 손으로 어루만져 주어도 소용없구나.
부엌에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햇살이 꼭 그녀 같았다.
곧 넘어갈 사람.
화장실로 향하여 마주한 문 앞에서 잠시 멈칫한다.
느낌이 세하다.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을 끼고돌아 주섬주섬 치마를 겉어 올리며 자리를 잡는다.
저녁준비 생각에 마음은 급하고 정신은 다른 곳에 가있고 손에 쥐어진 종이 달력을 얼마나 쥐어 잡고 있었을까.
별안간 가까이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붉은 건 지는 태양인데 내 눈에 비친 건 붉은 피투성이다.
똥과 함께 피투성이인 아기를 탯줄을 메단 채 걸었다.
탯줄이 끊어지면 아기와도 끊어질까 봐 그렇게 시간을 걸어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처음 세상에 나와 닿은 곳은 땅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손길과 엄마의 흙먼지투성이 옷.
엄마는 나를 가지고 나서 산부인과 진찰은 성별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말한다.
그때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봤다면 넌 지금 여기 없다고.
뒤이어 아빠도 말한다.
넌 주워왔다고.
평범하게 집에서 낳았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난 집도 아니고 길도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
받아주는 산파도 없이 낳고 엄마가 주웠다.
나는 똥통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 아기였다.
불쌍하다. 짠하다.
그때 내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만 있었다.
태어난 게 기뻐서.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태어나니 슬퍼서.
그때 진짜 불쌍했고 짠한 건 우리 엄마가 아니었을까.
더럽고 냄새나는 그런 곳에 나를 낳아서.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못해서.
깨끗한 보자기도 아닌 더러워진 옷에 싸안고 와야 해서.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엄마는
그 순간
내가 태어나서 행복함을 느꼈을까?
[전편 끝]
[연재 시작]
생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일에 어떤 의미를 두어야 하는 걸까?
우리 집에서 생일상은 일 년에 딱 한번 차려졌다.
그날은 바로 아빠의 생일이었다.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과 팥이 가득 올라간 시루떡과 산적, 그리고 수육과 새 김치까지.
엄마는 아침부터 좁디좁은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며 한상을 차려냈다.
한 겨울에 있는 아빠의 생일날은 펌프도 얼고 받아놓은 물도 얼고,
엄마에게 그날의 아침은 시작부터 차디찬 현실과의 싸움이었을 테다.
그 싸움을 이겨내고 차린 생일상이라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생일을 제외하고 우리 형제들은 누구도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평범하고 똑같은 하루였다.
다른 집도 그런 줄 알았다.
아빠의 생일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은 생일이 특별하고 행복한 날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매일매일이 생일날이면 좋겠어!'
충격적인 말을 듣고 그날 엄마에게 내 생일을 물었다.
엄마는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네 생일은 큰아버지 제사 전날이니까 00일!"
내 생일은 00일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전날로 기억되어 있었던 거다.
집안의 어르신이 돌아가신 날을 기려야 해서 제사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셨던 큰아버지를 잃은 슬픈 날이라 할머니는 이날만 다가오면 우울해하셨고 우울감으로 술을 마셔며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누구도 기뻐할 수 없는 날.
그게 싫어서 한 번은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고 용기 내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형편에'였다.
난 아빠처럼 바란게 아닌데.....
친구들과 그저 먹고 싶은 과자를 먹으며 그 시기에 맞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고 싶었던 거다.
울고 또 울고.
밉고 또 밉고.
싫고 또 싫고.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봐준 건 바로 위 언니였다.
꼬깃꼬깃 모아놓은 돈으로 과자를 사 와 옥상에 생일 상을 차려 친구를 초대하게 해 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술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고함소리에 생일축하 노래 묻혀버렸다.
친구들은 집밖으로 도망치듯 뛰어나갔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된 서로에게 던지듯 전한 미안하다는 말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아빠는 보고 싶은 형이란 그리움에 취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태어난 날에도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그날의 일기를 펼쳐보면 아직도 진하게 배어 나오는 알코올 냄새 위로
'속상해서 마셨다'
선명하고도 짧은 글귀가 박제되어 있다.
엄마는 내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 알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길 바래 평범한 하루로 만들어주려 했던 마음과
당신의 딸로 태어나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얼마나 아파했을까.
굳은살이 잡힌 거칠어진 손으로 빨갛게 부어오른 다리 위에 약을 발라주던 엄마.
이젠 내가 엄마의 손을 잡으며 더 거칠어지지 말라고 크림을 발라준다.
이렇게라도 하면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