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 꺼내는 중입니다.
결혼식을 몇 개월 앞두고 엄마의 걱정에 떠밀리듯 내과에 방문했었다.
건강하다면 건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었고 지금껏 크게 아픈 적도 없어서
'별거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진료를 받았다.
원장님께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해본뒤 다음 내원 때 보자며 진료예약을 잡아주셨다.
두 번이나 방문해야 해서 '귀찮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시간은 덧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예약일이 다가와 병원에 재 방문했다.
무더운 여름 움직여야 하는 일은 귀찮음과 연결되었고 얼른 진료를 끝내고 시원한 회사로 복귀하고 싶었다.
"악성으로 보이네요. 오진일 경우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말고 큰 병원에서 재검받아보세요"
걱정을 해야 하는 건지,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족 누구에도 말하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도.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나는 젊었다.
원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병원에 소견서를 들고 방문하여 진료를 받았다.
소견서를 내밀며 일말의 기대를 했다.
'검사필요 없겠는데요.'
나는 증상이 없었으니까.
내게 이런 일이.. 설마 오려고.
요즘 의사들은 엉터리가 많다니까.
예상과는 멀어지며 피검사부터 시작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순서대로 받았다.
받을수록 지쳤고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결과도 가까워져 오는 것 같았다.
빨리 아니라는 말을 듣고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
딱 이 심정.
검사 과정에서 내 몸 깊숙이 들어오는 바늘이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았다.
화가 났다.
왜 이런 귀찮은 일을 해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난 아닐 텐데.
그로부터 얼마 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 해 여름 흘려야 했던 땀방울을 다 흘려버렸던 것 같다.
**병원입니다.
** 맞으시죠?
검사결과 안내차 연락드렸어요.
*** 암입니다.
미친 거 아냐?
누가?
내가?
세상이?
내 몸에 떨어지지 않는 벌레가 달라붙어버린 것 같았다.
어서 떼어내고 싶었다.
징그러웠다.
오래 곁에 두고 싶지 않았고 내 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싫어졌다.
꼭 더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 벌레 때문에.
나는 좋은 일이 앞두고 있단 말이야.
내 좋은 일을 네가 다 먹어버리면 난 어떡해?
눈물이 나왔다.
신기한 건 이때 사람의 입장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걱정해 주는 척 발 빼는 사람.
대수롭지 않게 걱정해 주는 사람.
진짜 걱정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하는 사람.
내가 처한 환경이 바뀌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지만 엄마는 곁에 있어 줄 수 없었다.
곁에 있어줘야만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 이제 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몰랐고 아픔에 외로움이 더해졌다.
그 시기 참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것을 다르게 보았다.
내게 찾아온 것이 불행이었을지도 모르나, 내게 찾아온 것이 기회였을지도.
나는 불행을 잡았던 것일까?
기회를 놓쳤던 것일까?
그 해 여름,
내가 흘린 눈물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도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