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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면토끼 Aug 13. 2024

10 식구

딸과 아들





자라오면서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빠 없이는 살아도 엄마 없이는 못 산다고.

어쩌면 그 말이 엄마를 묶어둔 사슬이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계단에 앉아 흘리던 눈물 따라 흘러가고 싶었을 엄마,

그 물길을 막아버린 자식.


그렇고 그런 삶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꿈꾸었던 삶이 있지 않았을까?



큰아들을 일찍 잃은 할머니는 술만 드시면 우셨다.

할머니 곁에 아빠가 있었지만

할머니는 아빠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만큼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아빠는 손주를 안겨드리면 할머니가 아빠를 봐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째로 딸이 태어났다.

첫 자식이라는 기쁨이 그래도 있었나 보다.

기쁘기도 하면서 '살림밑천'이라는 아빠의 일기장에서 아쉬움을 보았다.


둘째도 딸이 태어났다.

다음에는 아들이겠지.


셋째도 딸이었다.

속상해서 술을 마셨다.


아빠의 일기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날의 아빠가 어디에 있었는지.

엄마도 외로운 싸움을 참 오래 했구나...


넷째, 다섯째, 여섯째가 태어나면서 엄마의 출산기록은 없었다.

마치 지워버리고 싶은 흔적처럼.

출산기록이 사라지자 엄마는 일어나야만 했다.

출산하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부어있는 몸으로 아침상을 차렸고, 그 언제부턴가는 보자리에 덮어둔 상을 뒤로하고 새벽녘부터 밭일을 나갔다.


싸늘하게 식은 국과 밥보다 힘든 건 싸늘한 아빠와의 식사였다.

두껍고 투박한 아빠의 손에서 질끈 묶어지는 머리칼.


엄마의 흔적은 곳곳에 있는데 왜 엄마는 이 자리에 없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자리에 없어도 동생은 늘어났다.

일곱째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라면 축복일까.

쌍둥이란다.

그것도 아들.


그런데 왜 바뀌는 것은 없을까?


당신들이 원했던 아들이었건만 엄마는 배가 부르기 전 보다 더 부지런히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다녔다.

역시나 병원은 성별확인을 하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전부였던 것이 결국 엄마의 발목을 잡았고 뒤늦게 병원에 갔을 때 임신 중독판정을 받았다.


엄마, 왜 도망가지 않았어요?


책임을 떠맡기 싫었던 병원의 차가운 거절을 몇 번 경험하고 겨우 받아준 곳에서 아빠는 각서를 써야 했다.


펜촉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은 후회였을까 두려움이었을까.

떨어진 눈물이 엄마에게 수혈되어 엄마는 살았지만

몸이 불편한 아이가 태어났다.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가능성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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