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생일이라 오랜만에 잠깐 모이게 되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동생은 비쩍 마른 체격을 줄곧 유지하며 한번도 살이 찐 걸 본적이 없는 듯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오랜동안 그 일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동생은 아기들을 이뻐한다.
말한 적 없지만 내가 동생을 존경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아기들을 끊임없이 이뻐하는 성품.
지칠만도 하고 손에 익은 일이니 대충할만도 한데 아기들을 대하는 솜씨는 대견하기도 하고 범접하기 힘든 일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같은 날 딸들의 생일에 엄마가 계셨으면 미역국 한 그릇 끓여놓고 기다리셨을텐데...
2019년 12월 내생일.
엄마는 미역국 한그릇 끓여놓으시고 전화를 하셨다. 촌스러운 국그릇 가득 미역국을 담아 놓고는 딸의 늦은 퇴근시간부터 기다리셨단다.
밥은 말지않고 가득담긴 미역국 한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 그것만 기억난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했다.
얼마나 더 엄마에게 미역국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몇년은 더 되겠지...
그것은 교만이었고 혼자만의 믿음이었고 기약없는 기대에 불과했었다.
그 후로 나와 동생들은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맛볼 수 없었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이제 겨우 6개월을 조금 넘겼다.
높디높고 구름 한 점없는 가을, 어느 일요일에 말이다.
봄인데 가을마냥 하늘빛이 그런 날엔 운전하다 하늘만 올려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그리고 그런 가을하늘빛같은 봄하늘이 싫다.
일찍 자버릇하는 동생은 생일케익 한 조각을 은박호일에 싸서 집에 간다고 일어섰다.
몇달만에 한번 스치듯 얼굴은 보는 거지만
반가웠다.
동생은 가고 막내와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궁시렁거렸다.
막내는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몇개 꺼내더니 주섬주섬 작은 찬통에 옮겨담았다.
비닐팩에는 물김치와 고추장아찌를 나눠담더니 내일 출근에 쫓겨 현관을 나서는 내게 까만 비닐봉다리를 건넸다.
조수석에 봉다리를 태우고 이하이의 한숨을 크게 틀고 운전을 했다.
몇번 리플레이를 하니 벌써 아파트주차장이었다.
잘 도착했다는 인사를 굳이 안해도 되는 동생들.
동생들이 나이가 드니, 아니 내가 나이가 오십이 되고 보니 그 교만과 기약없는 기대와 혼자만의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내가족들에게 내가 아끼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오글거리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나 더 산다고, 내일 일도 모르는 것을, 무엇을 장담하며, 무슨 약속과 다짐이 불변할 것인가.
영원과 한결같음을 운운했던 것들이 비겁하게 핑계대며 도망치는 일들이 천지인 지금, 오묘한 타이밍에 속이고 기만하고 숨어버리는 지금, 헤어짐의 마무리도 없이 비겁하게 잠수해버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내 동생과 식구들, 내 아이,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 나를 아끼는 걱정해주는 사람만 생각하며 그들을 지키며 살것이다.
사랑하는 내동생 희야.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