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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우혜우 Jan 05. 2022

가장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성

-배수아,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필자는 어린 시절 ‘로빈슨 표류기’라는 책을 좋아했다. 아마 최소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었을 것이다. 무인도에 떨어져 사회를 온전히 떠난 그가 자연 속에서 살 집을 직접 건축하고 먹거리를 구하며 소소한 살림 소품들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가 그것들을 만드는 것인 양 대리만족을 느꼈다. 층층이 쌓여가는 일상이 신선하고 대견했다. 현대의 일상이 남루하고 권태롭다는 인식과는 상반된다. 

 최근 tv 프로그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있다. 세상사의 번잡함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산속에서 혼자 사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자연의 품에서 삼 시 세 끼를 해결한다. 그것을 위해 일종의 수렵·채집을 하고 불을 피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하기에 불편하지만 대신에 그 일상들은 그 자체가 모두 의미 있고 즐거운 활동이 된다. 과도한 경쟁이나 사회생활 때문에 부차적인 문제로 밀렸던 일상의 소소한 활동들이 이제는 그것 자체로 충분한 삶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로빈슨’과 ‘자연인’은 어떤 면에서 행복하고 자유롭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의 주류들이 이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비정치적인 삶이란 저 두 부류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비정치적인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그것은 쉽게 예측하듯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그들이 '각자의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라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욕망의 분투로 누구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 예수와 같은 희생정신을 가진 고귀한 인품을 지닌 존재라 하더라도 그 역시 비정치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소설 속 김무사는 좋은 집안, 좋은 머리, 좋은 인품을 지녀 남을 욕망할 필요가 없는 주체임에도 그는 비정치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그가 아무리 비정치적인 삶을 지향해도 주변에서 그를 그렇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07년 kbs2 드라마시티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재일 교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한 김무사의 아버지는 그 승승장구한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정치적 완력과 신경전을 그의 아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김무사가 학자가 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학자가 되면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비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틀렸다. 김무사가 가장 그 자신으로서 인간답게 살면 살수록, 은둔하는 사람으로서 만족하고 철저히 비정치적인 삶을 지향하면 할수록, 그 비정치성이 정치적인 부메랑으로 누군가에는 작용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나의 비정치성이 남의 정치성에 의해 재단당하고 이용당하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것의 기저에는 ‘비교’가 있다. 누군가의 성실성이 누군가의 게으름을 억압하고 누군가의 재능이 누군가의 재능 없음을 탓하게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장점들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 모두는 그 자체로서 의미 있다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만큼이나 이상적일 뿐이다. 비정치적인 인물이 그 비정치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운 좋은 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를 둘러싼 정치적인 상황들과 수많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스스로 비정치적이라고 여기는 그는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얻어낼 것이 있는 비정치적인 인물이라면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 비정치성에 조력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질수록 우연의 가치에 많은 비중을 부과하게 된다. 어디선가 본 글귀에 의하면 ‘우연은 익명을 가장한 신의 의지’라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성공과 미담은 그것을 이루어낸 인간의 의지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정치적 관계와 이해관계의 조합 속에서 우연히 승리한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면 너무 운명론에 치우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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