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네시아 무인도에서의 일상 체험기
가만히 있는 무인도는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 중심에 떠 있는 것들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이를테면 포기하고 떠내려보낼 것들과 꽉 잡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이곳은 그저 그런 세계의 바깥입니다.
##ᅠ벌써 15바퀴를 돌았다. 이번에도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는 부루마블 판 위를 몇 바퀴 휘돌다 멈췄다. 누군가의 땅을 뺏고 뺏는 곳이 아닌, 쳇바퀴돌 듯 같은 곳을 돌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을까. 판의 가장 외진 곳. 내것이 아닌 호텔과 빌딩숲 사이로 저 멀리 무인도가 보였다.
#지도엔 없는 곳
ᅠ지도에 없는 곳을 가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세계지도에서ᅠ'온낭(Onang)'이라는 무인도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섬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현지에서 이 지역만 크게 확대되어 있는 지도를 샀다. 왼쪽이나 오른쪽 아래 대략 지구상에서 어느 위치쯤 있다는 표시 정도가 있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가 접었다. 세상에 지도에 없는 한두곳 쯤은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인도가 계속 지금의 인도였으면 하며 사진을 찍는 작가처럼, 쿠바가 지금의 모습을 계속 간직했으면 하는 여행자의 심정처럼.
ᅠ온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미크로네시아연방공화국에 있는 한 무인도였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북동쪽에 있는 미크로네시아연방공화국의 4개주(야프, 축, 폼페이, 코스라에) 중ᅠ'축'주(Chuckstate)와 가까운 곳이다.ᅠ축까지 가는 것은 괌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 되니 간단한 일이었다. 대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괌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 정도를 날아 축에서 내리면 되는데 이 때 내리지 못하면 다음 섬인 폼페이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려할 섬에 도착하기 전에 일찍 내리면 또 며칠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ᅠ괌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축을 거쳐, 폼페이에서 승객과 화물을 내리고 또 태운다. 그리고 마샬에서 또 한번 착륙을 했다가 하와이로 향한다. 돌아올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와이에서 출발, 마샬, 폼페이, 축을 거쳐 괌으로 들어가니 이곳 사람들에겐 비행기가 일종의 마을버스인 셈이다.
ᅠ우리가 축에서 내렸을 때 폼페이섬으로 가려고 했던 한 일본인 부부가 잘못 내렸다. 비행기가 축, 폼페이, 마샬, 하와이 순으로 가는데 축에서 내렸으니 한 정거장 일찍 내린 것이다. 짐은 이미 폼페이로 갔기에 아무것도 없이 축에서 며칠을 묶는 것을 봤다. 마을버스를 잘못 내린 셈 치고는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불안해하거나 그닥 짜증내지 않는 눈치였다. 누구나 동네를 오가는 버스에서 한 두 정거장 쯤은 지나치기도, 더 일찍 내리기도 하거니와 잘못 내린 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확률이 여기는 꽤 높기 때문이다.
축의 공항은 시골의 버스 터미널처럼 작다. 평소엔 문이 닫혀 있다 딱 비행기가 뜨기 전후 시간대에만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다. 승객들이 내리고 타는 동안, 수화물을 빼고 싣는 동안 승무원과 기장이 공항 밖으로 나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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ᅠ날씨가 좋지 않을땐 물론이고, 목적지까지 가는데 승무원이 법정 근무시간을 넘을것 같으면 중간의 한 섬을 건너뛰기도 한다. 축에서 우리가 무인도에 들어가는 날도 그랬다. 비행기가 축을 거치지 않고 괌으로 갔단다. 축에서 비행기를 하루 더 기다려야하는 승객들에게 체류비가 지급된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참으로 소설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ᅠ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을 가볍게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지만, 21세기에 이게 가능이냐 하냐는 항의를 들을법 하지만 뭐 더 이상 목청을 높여봐야 비행기는 떠났고 그 비행기는 다시 온다.ᅠ그나마 다행인 것은 끝을 찍고 다시 돌아올 비행기가 있다는 것이다. 위안이 된다고 할까. 끝을 찍고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섬을 빠져나가려면 결국 섬에 들어올 때 봤던 승무원이 그대로 타고 있는 이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그런 끌림이 이곳 사람들을 여유있게 하나보다.
ᅠ떠나는 사람은 기약없이 한번에 멀리 가버리는 태평양의 외딴 이곳. 다시 온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임이 분명하다. ᅠ이번에 함께 무인도로 떠난 병률형은 3년 전에 이곳을 한 번 방문했었던 적이 있다. 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보니 3년 전 만났던 스튜어드도 그대로였단다.ᅠ병률형의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고 예전에 자기가 찍은 도장이라며 반가워했던 이민국 직원도 있었다. 우리가 잘 들여다 보지 않을 때 지도에서 슬며시 점으로 나타났다 지워질것만 같은 그 시간에 비행기는 점에서 점으로 떨어지고 있다.
ᅠ미크로네시아연방에만 600개가 넘는 섬이 있어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축은 다시 크게 공항이 있는 웨노섬과 톨섬, 더블런섬, 페판섬, 우먼섬으로 나누어 진다. 우리는 괌을 거쳐 축주의 주도이자 공항이 있는 웨노섬에 내린 후 3일을 머물렀다.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잘 잡혀있던 축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톨 섬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고서야 온낭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인도로 갔다. 저마다 세계지도의 가운데 자신이 사는 곳을 그리는 세상에서 세상의 중심이 아닌 곳으로.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