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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7.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미크로네시아2

미크로네시아 무인도에서 생활한 이야기 두번째

#무인도 다이어리 

    

ᅠ그날의 바다는 청새치의 날카로운 등지느러미 같았다. 물에서 솟아나 있는 수만개의 등 지느러미들이 내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높은 파도에 나는 두 팔로 배를 꽉 잡았다. 배를 운전해주는 친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능청스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난항일수록 태연하려 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특징일까. 함께 간 병률형은 온 힘을 다해 튕기지 않으려는 자세로 핏줄을 세워 기둥을 잡고 있었다. 배가 들썩거리며 공중에 떴다 철썩 내려앉길 반복하다가 한번은 꽤 오랜 시간을 공중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내 다시 파도의 표면으로 떨어졌다. 대양은 풀었던 줄을 다시 감는 요요처럼 우릴 던졌다 당겼다. 그러다 배의 절반쯤이 물에 잠겼다. 아차, 하는 순간 바다는 제빨리 카메라가방 뒷편에 넣어둔 일기장을 삼켰다.     



ᅠ조사한 자료들과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적어둔 내게는 꽤 소중한 것이었다. 무인도에서 하고 싶은 것들과 계획, 고민하고 싶은 것들도 적어 두었고,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 이를테면 불을 피우는 법이나 낚시줄을 엮는 법 등이 그려져 있었다.ᅠ그때가 아니면 글로 써내기 힘든 감성 따위와 사랑하는 사람의 주소도 있었다. 남태평양 한 가운데의 무인도 직인을 찍어 엽서를 보내는 일은 꽤나 낭만적인 일을 것 같았다. 우리가 향하는 무인도의 해변은 붉은 산호들이 깎기고 갈려 모래가 되었다니 붉은 모래가 직인이 될 수도, 납작하게 잘 마른 조개가 우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져간 한라산 소주병을 비우고 그 속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던져보고도 싶었다. 그런 일련의 계획들까지도 적혀 있었기에 한동안 일기장이 빠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ᅠ     


ᅠ잊어야 했다. 비우러 간다는 내게 바다가 준 선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기가 느껴지는 파도에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는 배여야 할까. 파도가 거셀수록 배는 파도에 정면으로 맞선다. 옆면을 맞아 뒤틀리고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다. 당장 가장 소중한 물건이지만 지금은 내게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미 사라져버린 일기장에 연연하며 나의 옆구리를 보이기 싫었다. 사방이 들끓어 요동치는 곳 말고 멀리 가만히 있는 다른 섬들을 주시했다. 저 섬들도 울렁이고있을까. 보이는 아무 섬에 내리고 싶었다. 어차피 사람이 안사는 다 같은 무인도일터이니.ᅠ     


ᅠ 한참을 더 가서야ᅠ'온낭'이란 무인도에 다달았다. 주렁주렁 과일이 매달려 있거나 큰 호수가 있다거나 정글이 있어 동물들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강하게 나를 압도하는 기운이 감돌았다.ᅠ무인도라지만 아무도 없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만들어둔 규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보이지 않는 힘은 자연의 힘일 수도, 나의 무능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곳을 모르는 외지인이기도 했다. 도시에 적응된 삶은 야생에 며칠 있는다고 모조리 벗겨지지 않을터였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들을 이곳에서 게워낼 것이다. 속안에 든 것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갈 것이다. 어쩌면 무인도에서 하려 했던 일들, 생각하려 했던 것들, 내 생각을 채워나갈 일기장을 바다에 빠뜨렸을 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른다.ᅠ  

   

ᅠ'내 맘대로 되지 않는 곳이어도 괜찮을거야’   

  

ᅠ'온낭'이라는 이름의 무인도에 도착하고 예비로 가져온 노트에 적은 첫 문장. 거친 파도의 파편들이 박혀 젖어있는 노트 앞에 제목을 적었다. <무인도 다이어리>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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