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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7.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미크로네시아3

#오래 듣지 못하는 소리

ᅠ서울에서의 나는 비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우산 하나를 들고 가다 건물에 들어가면 적당한 곳에 우산을 두고 볼일을 봤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서야 계속 비가 오는지 물끄러미 하늘에 눈길을 줄 뿐이었습다. 아침에 보고 온 일기예보가 맞지 않더라도 그닥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니까요. 차라리 식당에 두고 온 우산이 더 신경쓰이는 날이 많았으니 비 자체보다는 비가 오면서 생기는 일들에 더 촉각이 곤두서 있었는지 모릅니다.     




ᅠ ᅠ반면 무인도에서의 비에겐 눈길을 주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가 오면 세상의 일들이 달라졌습니다. 널어둔 것들을 걷고 빗물을 받는 통을 세우러 뛰어야 했습니다. 텐트를 나무 아래로 옮기고, 반대로 그가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이 울리는 일이니. 더 잘 들을 수 있게 비는 바다를 잔잔하게 만들고 그 울림을 수없이 작게 퍼지는 둥근 파형으로도 설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넓은 바나나잎에 떨어졌다가 빗물을 받는 물통으로 또르르 굴러가는 빗방울 소리도 듣다보면 공중에서 바람에 날려 자기들끼리 합쳐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ᅠ우리가 온 무인도는 다행인지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었습니다. 그 집터의 지붕은 깡통을 펴서 만든듯한 스틸 지붕이었는데요, 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그가 보내는 신호를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가 그쳤다, 반복되는 이런 관심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비가 내리는 시간이 짧아서 아쉽기까지 했으니까요.     



ᅠ몰랐는데요, 비가오는 때의 소리 중 제가 가장 좋아 하는 소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지펴둔 모닥불의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타닥타닥 장작이 모닥불 속에서 타들어 가는 소리도 좋지만 이 소리는 더욱 불규칙해서 좋았습니다. 불이 꺼질까봐 올려 둔 코코넛잎 사이로 들어오는 빗방울이기에 소리가 드문드문입니다.      

 

 빗방울도 이 불 속으로 떨어지기 위해선 잘 떨어져야 하는데요. 돌로 만든 아궁이 위로 비를 막기 위해 바나나와 코코넛잎을 덮어 두었습니다. 그러니 빗물은 바나나 잎을 잘 굴러내려와 코코넛 잎의 빈 부분을 통과해야만 재 속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더 빨라지는 세상에서 코코넛 잎 하나만 더 올려도 저는 느린 세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꽤나 묵직합니다. 장작에서 갓 무너져내린 재 위, 불이 붙어 있는 장작과 맞서는 이들의 절규를 저는 즐깁니다. 장작이 타면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의 삶을 씻어내는 소리가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ᅠ저는 그 소리가 삶이 다할 때까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응어리들이 '프스르르르' 피어나는 소리라 믿으려 합니다. 왠지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또 그 템포가 빠르지 않아 좋습니다. 마지막이 마냥 경쾌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그 앞에서 피어오르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ᅠ안타깝게도 자주 비가 오지만 한번에 오래 오진 않네요. 모든 일이 그렇듯 함께 이번 비도 정이 들까 하던 찰나에 멈춰버렸습니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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