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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7.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미크로네시아4

미크로네시아 무인도에서 새를 잡다

#적도의 새로부터 날것에 대해     

ᅠ무인도에 와서 산적이 됐다. 오카모토 켄타로우의 만화 <산적 다이어리>의 영향이다. 병률형이 무인도에서 읽어보라고 가져와 무심코 던져준 만화책.ᅠ오카모토 켄타로우라는 만화가이자 사냥꾼이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농촌으로 내려가 사냥꾼의 삶을 시작하는 것부터 만화는 시작된다. 총포사에서 총을 구입하고 라이센스를 받는 것부터 조류들과 야생 동물들을 사냥하는 과정들을 보고 흥분했다. 나도 책을 덮고ᅠ무인도를 해집기 시작했다.      



ᅠ섬을 수색하며 발견한 새. 적도의 새여서인지 참 맛이 없게 생겼다.ᅠ어차피 맛은 별로이니 먹어 볼테면 먹어봐라는 색이다. 퍼런 바닷물과 대조되는 붉은 눈부리와 칙칙한 나무색의 몸통. 그 빨간 것이 수평선을 경계로 하늘과 바다를 오가는데 참 낯설다. 저 머리 부근엔 독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독이 있는 새는 들어본 적은 없지만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을 들게 만드는 새였다.     

ᅠ다른 동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을 띄며 진화를 했을 때 대체 저 새는 뭘 한걸까. 보호색도 아닌 튀는 색을 하고 있으니 이곳에 포식자가 없거나 진화를 거부할 정도로 고집이 억척스레 쎈 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빠르거나 싸움을 잘 할 것 같이 생기지도, 저 높은 공중에서 긴 날개를 펴고 글라이더처럼 선회비행을 하는 군항조만큼 큰 것도 아니었다.     



ᅠ덫을 만들기 시작했다. 총이 없으므로 켄타로우처럼 저격을 할 순 없었지만 다른 방법들이 있었다. 어릴 때 소쿠리를 엎고 나뭇가지로 고정을 한 다음 실을 연결하여 새를 잡은 적이 있다. 낙동강과 가까운 시골 할머니집에서 낚시로 베스를 잡은 것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참새를 잡은 일이었다. 수수나 기장같은 뿌려둔 곡식을 먹기 위해 마당까지 참새들이 모여들었다. 실을 집까지 연결해 창문에서 보고 있다가 새가 오면 실을 잡아 당겼다. 그러면 나뭇가지가 넘어지면서 곡식을 먹고 있는 참새를 소쿠리가 덮치는 것이었다. 조그만 기척에도 바로 미련없이 날아가버려서 매번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가장 먼저 이 방법이 생각났다.ᅠ     

ᅠ먹이는 불린 쌀알이었다. 소쿠리 대신 냄비를 엎었다. 새를 기다렸다. 해가 지자 바다를 누비던 새들이 섬으로 돌아왔다. 불린 쌀알을 홀리듯 정신없이 쪼아먹는 녀석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실을 잡아 당겼다. 이 한 번을 놓치면 또 하루를 놓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를 덮쳐야 할 냄비가 바닥에 닿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ᅠ무거운 냄비가 떨어지는 것을 알고 날개를 퍼득여 날아가려던 찰나, 냄비가 온전히 바닥에 붙었다. 새의 한 발만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날개의 퍼덕거림이 심해 곧 냄비가 들릴 것 같았으므로. 곧 육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나의 뇌와 요동치는 배와 신나서 뛰고 있는 발의 힘으로 순식간에 달려가 새를 잡았다. 다른 새들이 허공을 날며 붙잡힌 동료를 기다리는듯 했으나 어쨌든 해체 시작.ᅠ     

ᅠ전화로 치킨을 주문만 할 줄 알았지 살아있는 새의 숨통을 끊은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 집 근처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명절 때 독수리(시골닭이 워낙 커서 가족들은 독수리라고 했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진짜 독수리라 생각했다)를 고르고 한바퀴를 돌고 오면 손질된 고기만 받아봤지 직접 해체를 해본 적은 없었다.     

ᅠ <산적 다이어리>에서 잡은 새를 어떻게 손질하는지를 보면서 따라했다. 목을 비틀어 죽인 뒤 피를 빼고 뜨거운물을 부어 털을 뽑았다.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똥집을 딴 다음 모래들을 빼냈다. 심장, 간, 콩팥 따위는 뾰족하게 손질한 나뭇가지에 꽂아 구웠다. 털을 뽑고 내장을 뺀 새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불길에도 잘 견딜 것 같은 나무에 새의 다리를 꼬고 낚싯줄로 고정시켰다. 모가지는 쳐냈지만 여전히 비죽 나와있는 목뼈도 낚시줄로 묶었다.ᅠ   

  

ᅠ먹을 것은 없지만 질긴 새의 가슴살을 뜯으며 세상 모든 날것들은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섬으로 들어오기 전날 병률형과 마시다가 남아서 가져온 와인에 담가두었는데도 질겼다. 적도의 새는 상당히 퍽퍽한 고기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얼마나 지구 깊숙한 곳으로 왔는지 알게해주었다. 지방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고기가 털을 뽑았을 때 한번, 다 구워졌을 때 또 한 번 이렇게 두번에 걸쳐 크기가 줄어들었을 때라도 알아봤어야 했다. 말 그대로 사육 당하는 닭이 아니라 야생에서 생존하고 있는 고기란 것을.      


ᅠ적도의 새도 날것이었고 강했으므로 소주를 꺼내 몇모금 마셨다. 그래서 생생한 날것의 회에는 소주가 잘 어울리나 보다. 세 잔을 마셨다. 남은 소주는 아껴두었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한 잔, 잡은 생선을 회로 쳐서 한 잔, 해변에서 거대한 거북을 봤을 때 또 한 잔, 섬에서의 마지막 날, 무수한 별을 쓸어담는 파도소리에 또 한 잔을 마셨다. 그렇게 소주는 비워졌고 세상 가장 날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만났다. 무인도에서 이상한 새 한마리를 잡아 먹고, 야생을 이야기하고 소주를 이야기하다 결국 소주 한 병엔 세상이 들어있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린 밤이었다. 도시에서 사육된 인간이어서 모든 것이 날것이었던 날이었다.ᅠ     



ᅠ참, 술꾼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해입니다. 섬에는 한라산 하나만 들고갔습니다. 섬으로 산을 들고 갔으니 커 보이겠지만 딱 한 병이랍니다.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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