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6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설여사 이야기

개명한 설여사

by 설여사 Jan 07. 2025

내 이름은 용순이었다. 난 촌스런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누가 내 촌스런 이름을 부르면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새 학기가 싫었다. 학년이 바뀌고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내 촌스런 이름을 호명하면 또 올 것이 왔구나 체념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밀려오는 수치심은 어쩔 수 없었다.


사춘기 때 엄마에게 이름을 바꿔 달라고 이야기했었다. 엄마는 용순이란 이름은 외할머니가 옆 마을 이름 잘 지으시는 분에게 돈 주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돈 주고 지은 이름 이란 소리에 창피함을 조금 참아보기로 했지만 그래도 싫었다. 이름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라도 가면 창피해서 더 소심해졌고 소극적이 되었다.

그런 이름이 뭐가 좋은 건지...


좋은 남편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으니 그나마 그것으로 조금의 위안을 삼으며 살았지만, 촌스런 이름 때문에 바깥활동을 피하고 집에 숨어 집순이가 된 것 같다.

난 내향적이지만 소극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름 때문에 소극적으로 지낸 적이 많다. 어딜 가도 내 이름이 자꾸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내 이름이 평범했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이고 활발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동안 개명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도 없었고 개명하는 게 예전엔 어렵다고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개명하는 것도 간편해졌고 법원에서 개명 신청을 하면 거의 받아들여진단다.


만 50살 생일날 뭐가 제일 선물로 받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내가 제일 바라는 것은 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0년을 살면서 내가 젤 하고 싶었던 건 내 이름을 바꾸는 거였다. 그래서 개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50년 촌스런 이름으로 마음 불편하게 살았으니 이젠 남은 인생 예쁜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보자.


생일날 인터넷으로 작명소를 검색해서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거금 이십만 원을 결제하고 새 이름을 주문했다. 2주 뒤 나의 사주에 맞는 네 개의 이름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한 달을 고민하다 그중 젤 맘에 드는 이름을 선택하고 인터넷으로 법원에 셀프 개명 신청을 했다. 개명신청할 때 개명신청사유를 적는 란이 있다. 난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촌스런 이름으로 살면서 이름 때문에 창피해하며 나의 자존감에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았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생각하는 예쁜 이름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의 자존감을 챙기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작성했다.


그렇게 개명을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법원에서 개명이 허가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드뎌 촌스런 용순이에서 벗어났다.

제일 먼저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새로 신청했다. 그리고 새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후 용순이란 이름으로 되어있던 모든 기록들을 새 이름 내가 선택한 예쁜 이름 지윤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은행, 보험부터 시작해서 자격증들도 새로 발급받고 인터넷에 회원 가입한 모든 사이트에도 이름을 바꿨다. 그것도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젠 예쁜 이름으로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내 촌스런 이름을 지워나갔다.  


남편은 새 여자와 사는 것 같다고 내 새 이름을 불러주며 좋아했다.

아들과 딸은 엄마의 새 이름을 어색해했다.

지인들은 잘했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가끔 옛날 이름도 좋았는데 왜 바꿨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땐 이렇게 말해주었다.

"본인이 용순이로 살아볼래요?"

하면 모두 멋쩍어하며 웃는다.


내가 50년을 촌스런 이름 때문에 마음 불편하고 소심하게 살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그렇지 않게 살고 싶다. 사람 많은 병원에서 간호사가 내 이름을 크게 불러도 이젠 창피하지 않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해도 이젠 이름 때문에 주눅 들지 않는다.


개명 후 바뀐 이름으로 불러주는 지인들이 많지만 여전히 용순이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개의치 않다. 내가 용순이건 지윤이건 예전부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다만 센스가 없구나 생각할 뿐.


그렇게 설여사는 50살 셀프 생일 선물로 이름을 개명했다.

설여사의 앞으로의 인생이 예쁜 이름처럼 당당하고 찬란하게 빛나길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설여사 이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