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벚꽃여행을 다녀와서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니 지인들을 만나면 의례 인사가 '여행 한번 가자'이다.
지인들은 봄이면 꽃놀이 여행을,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가자고 한다. 가끔은 가까운 동남아도 넘본다.
그동안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며 살던 여자들은 이제야 남편과 자식 걱정 안 하고 맘 편히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50이 넘은 소심한 중년 아줌마인 설여사는 일단 집밖으로 한 발을 내딛으면 설렘반 걱정반이다.
꽃피는 봄이 되어 50대 중 후반의 27년 지기 여자 다섯은 경주로 벚꽃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설여사는 스마트폰으로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했고, KTX 기차표도 예매했다.
얼마 전 개통한 GTX를 처음 타고 서울역으로 가야 하고 KTX는 두 번째다. 지하 깊숙이 있다는 GTX는 오르락내리락 입. 출구를 잘 찾을 수 있을지, GTX에서 내려 서울역 KTX 타는 곳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날짜가 다가올수록 소심한 설여사는 걱정이 앞섰다. 일주일 먼저 경주를 다녀온 아들에게 어떻게 환승을 해야 하는지 KTX 타는 곳은 어떻게 가는지 물었더니 환승할 때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잘 따라가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타라고도 알려준다. 그리고 표시가 잘 되어 있다고 외국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냐고 핀잔을 한다. 그래도 아들 덕분에 서울역엔 무사히 잘 도착했다.
KTX를 10여 년 전 이용하고 이번이 두 번째인 설여사다. 비행기를 타듯 KTX를 탈 때도 표를 찍고 들어가는 줄 알고 전날부터 사이트에 들어가서 예매한 표를 스마트폰 화면에 띄우는 법을 익히느라 얼마나 긴장했던지 모른다. 그러나 경주에 도착하는 동안 서울역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KTX는 표검사가 없었다. 그냥 인터넷을 통해 예매하고 내 자리에 잘 앉아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이 한 번도 표를 확인하지 않고 도착지에 도착한다. 승강장 내려가는 길에도 표를 검사하는 역무원은 없었다. 기차 안에서 승무원이 수시로 지나다니지만 본인들이 확인한 빈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있지 않는 이상 표를 검사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드니 잘 이용하지 않는 교통수단이 국내인데도 외국 같은 낯선 느낌이 든다.
그렇게 27년 지기 여자 다섯은 들뜬 마음으로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에서는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엔 경주역에서 렌터카가 있는 곳까지 픽업을 해주거나 사람이 상주해 있는 사무실이 근처에 있는 렌터카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다 일주일 먼저 경주 여행을 가는 아들의 소개로 경주역 주차장에 사람과 전혀 대면을 하지 않고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렌터카를 알게 되어 예약을 했다. 경주역 공영주차장에서 전날 차를 쓴 사용자가 사이트에 적어둔 위치에서 렌터카를 발견했다. 차번호를 확인하고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차문을 여니 신기하게 문이 열린다. 사람이 차키를 주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처음 보는 차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제주에서만 렌터카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어서 비대면 렌터카 이용이 참 낯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차 외관과 내부는 청소가 안되어 있어서 나름 실망했지만 그래도 사고 없이 잘 굴러만 가기를 바라며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본격적인 경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단 경주 현지인 추천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첨성대와 대릉원이 있는 관광단지로 출발했다. 경주는 벌써 벚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은 우리의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아름다운 꽃들과 경치를 감탄하며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황리단길에서 소녀감성으로 네 컷 사진도 찍었다.
네 컷 사진도 무인점포다. 상점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소품으로 각자 취향 껏 꾸미고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커다란 상자 안의 모니터를 보며 매뉴얼 대로 결제를 하고 원하는 프레임을 고르고 사진을 찍으면 네 컷 사진이 나온다. 50대 중 후반 아줌마들이 이 어려운 것도 해냈다.
스마트폰 길 찾기를 보며 황리단길을 걷고 우리가 가고 싶었던 맛집을 찾아가서 저녁을 먹고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야경투어까지 야무지게 하고 10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스마트폰 앱에서 고른 독채 한옥이다. 스마트폰 앱에서 사진과 리뷰만 보고 골라 결제를 하고 예약을 하면 이용 당일 날 아침 집주인으로부터 비번과 함께 숙소 이용 안내가 스마트폰으로 온다. 늦은 저녁 숙소에 도착해서 집주인이 스마트폰으로 알려준 비번을 누르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깨끗이 정돈되어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사람은 없다. 이 또한 비대면이다. 우리는 다음날 지정된 시간까지 숙소를 이용하고 정리를 하고 문을 닫고 숙소를 나오면 끝이다.
여행하는 내내 스마트폰을 이용해 맛집을 검색해서 내비게이션을 보고 이동을 하고 가는 곳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경주역 공영주차장에 렌터카를 주차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반납신청을 하면 렌터카 이용도 끝이 난다.
그리고 경주역에서도 아무런 확인도 없이 그저 우리가 예약한 시간에 도착하는 KTX열차를 타고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으면 목적지까지 아무 제재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KTX안에서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카톡으로 공유하고 여행경비를 정산해서 바로 카톡으로 주고받았다. 이젠 계좌번호 같은 건 물어보지 않아도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동안 자차를 이용하고 사람이 상주하는 숙박업소를 이용하며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잘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있는 것을.
요즘 카페만 가도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해야 한다. 나름 신문물에 거부감 없이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설여사도 가끔 그 앞에만 서면 가슴이 콩당콩당 떨리곤 하는데 집 근처도 아닌 먼 곳으로 여행은 더욱 두렵다.
일단 출발 전부터 인터넷으로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해야 하고 맛집과 주변 여행지들을 검색해야 한다. 거기다가 이젠 모든 게 스마트폰으로 비대면으로 이용해야 하는 시스템들이 늘어나고 있다. 렌터카를 비롯해서 숙소까지 비대면이다. 스마트폰이 서툰 소심한 중년 아줌마인 설여사는 혹여 작동이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세상은 점점 나이 든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진취적인 50대 중 후반의 우리도 이렇게 낯설고 어려운데 더 나이 드신 분들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점점 세상은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져 간다. 내가 나이 드는 것보다 더 빠르게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반겨주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비대면 상업시스템들이 더 발전할 것이다. KTX역엔 이젠 개찰구도 역무원도 없다. 렌터카는 핸드폰으로 문을 열고 닫는다. 숙박시설엔 주인도 상주하지 않는다.
경주로 벚꽃여행을 다녀왔다. 흩날리는 벚꽃과 아름다운 야경의 경주는 아름다웠다. 27년 인연의 좋은 지기들과의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의 마음이었다. 무사히 비대면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지지 않고 잘 싸우고 돌아온 것 같았다.
갈수록 설여사는 스마트폰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소통이 안돼서 버벅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느리더라도 서툴더라도 주저앉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설여사의 스마트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