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기도하는 어머니

by 설여사

늦은 나이에 불교에 귀의하신 남편의 당숙께서 멀지 않은 절에 계신다. 취준생인 아들을 둔 설여사는 그동안 찾아뵙지도 않다가 작년 이맘때쯤 당숙께 인사도 드릴 겸 취준생 아들을 위해 이참에 절에 연등도 한번 달아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대동하고 절을 찾았었다. 절에 도착해서 법당에서 예불을 보고 계시는 스님을 30여분 기다리며 절도 둘러보고 한쪽 구석에 자라난 쑥을 한 줌 뜯었다. 쑥을 뜯는 것도 처음이고 연등을 단것도 처음인 날이었다. 스님은 예전에도 인상이 참 좋고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예전엔 친척 당숙으로만 뵙다가 스님이 된 모습은 조금 낯설었지만 여전히 얼굴표정이 참 온화하시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셔서 감사했다. 어쩌다 스님이 되셨는지, 그동안 말 못 할 일들이 참 많으셨겠지만 어떤 깨달음을 얻고자 이곳까지 와 계시는지는 차마 짐작하지 못하지만 그저 잘 계시는 모습을 뵈니 안심이 되었다. 작년엔 절에 연등을 달고 스님께 인사만 드리고 쑥한 줌을 뜯어와서 처음으로 쑥도다리국을 끓여 먹었었다.


그리고 올해 쑥이 올라오는 봄이 되니 다시 절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쉬는 날 스님의 예불시간을 피해서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절에 도착했다. 먼저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삼신당에도 가서 기도를 드렸다. 아직은 어떻게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귀동냥으로 들은 대로 삼배를 올리고 두 손 모아 합장 인사를 하는 게 전부이다. 낯가림 심한 설여사는 부처님과도 낯가림을 해서 아직은 불당에서 절을 하는 것도 합장인사를 하는 것도 왠지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어미의 마음으로 낯설고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삼신당에서 내려오는 길 한편에 올해도 쑥이 올망졸망 올라와 있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손으로 쑥을 한 줌 뜯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딱 된장국 한 끼 식구들과 먹을 정도의 한 줌의 쑥을 캐서 외투 주머니에 넣고는 절 종무소에 들러 연등을 접수하고 드디어 스님께 연락을 드렸다. 오전 예불을 끝내시고 점심을 드시고 쉬고 계시던 스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잘 지내셨냐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스님은 취준생인 아들 사주를 봐주시겠단다. 취업을 못하고 있는 아들 때문에 안 그러려고 해도 조금씩 조바심이 올라오려 하던 설여사였다. 옳거니 하고 염치 불고하고 아들의 사주를 말씀드렸다. 아들의 사주는 아주 좋은 사주라고 하셨다. 작년까지는 운이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대운이 들었다고 취업도 될 것이고 이제부터는 다 잘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참 다행이다. 이제부터 다 잘 된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편의 사주도 간단하게 봐주신 스님은 딸의 사주도 봐주신단다. 너무 귀찮게 해 드리는 것 같아서 딸은 다음에 봐달라 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마음의 위안을 받고 절을 나왔다.


기분이 좋은 설여사는 절에서 돌아오는 길에 절 근처 유명한 장어집에서 장어를 포장해 오기로 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장어로 오늘 저녁을 차려주기로 했다. 젤로 크고 좋은 장어를 골라 계산하고 초벌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계산대 직원이 밖을 보더니 "어~어~어~~"하며 놀라더니 밖으로 뛰어나간다. 무슨 일인가 밖을 쳐다보니 커다란 파라솔이 바람에 쓰러져 주차장에 세워둔 차 위에 넘어졌다. '앗! 파라솔 아래에 있는 차는 우리 차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에게

"여보 우리 차를 덮쳤어. 이상이 없나 가봐"하니 남편도 놀라 나간다. 남편이 직원들이 파라솔을 정리할 수 있게 차를 다른 곳으로 빼준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차에 이상이 없나 물어보니 애매하게 찍혔단다. 나에게 나와서 보라고 한다. 마침 초벌이 끝난 장어를 받아 들고 차있는 곳으로 갔다. 이리저리 훑어보니 뒷좌석 창문틀에 콕 찍힌 자국만 있고 나머지는 멀쩡하다. 커다랗고 무거운 파라솔이 우리 차를 바로 덮쳤는데도 이 정도 자국만 난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잘못 덮쳤어도 유리창이 깨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아무도 와보지 않고 파라솔만 정리하고는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차가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그냥 갈까 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는 생각에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가

"파라솔에 저희 차가 찍혔는데요..." 하니 그제야 매니저란 사람이 쫓아 나온다. "차가 많이 파손되었나요?"

"많이 파손된 건 아니고 그냥 콕 찍혔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안 계시고 파라솔만 접고 모두 들어가 버리시길래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요."

"아까 손님이 그냥 차를 빼주시길래 아무 이상 없는 줄 알고. 지금 점장님이 안 계셔서 그런데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점장님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괜찮냐? 미안하다. 한마디면 될 것을 매니저는 점장에게 연락드리라고 전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묻는다.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어집 직원들 처신이 조금은 불만이었지만 그 크고 무거운 파라솔이 차를 쳐서 하마터면 차가 크게 부서졌을 수도 있었는데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며 절에 다녀와서 그나마 큰 화를 면하지 않았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종교가 없는 설여사다. 성당에 가면 마리아 님께 기도하고 절에 가면 부처님께 기도드리는 무종교 기도녀다. 절에 연등을 접수받는 종무소 신도분께서 기도는 언제든 하면 좋다고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에 잠자기 전에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면 좋다고 알려주시며 남편과 나에게 염주팔찌를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당숙스님은 당신의 어머님이 늘 자식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더라도 악하게 살지 말라며 늘 당부하셨다고, 어머님이 어려서부터 좋은 말씀을 참 많이 해주셨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친척분들 중에 젤 인상이 좋고 따뜻했던 형제분들이셨다.


나는 어떤 어머니일까? 정화수는 못 떠놓지만 하느님과 부처님을 모두 찾는 무종교 다 믿음 신도이지만 아침, 저녁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실한 기도녀가 되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훗날 나의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그래도 괜찮은 엄마였어'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이기를 바라며 오늘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 숙여 하느님께. 부처님께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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