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렬독서

책 먹는 설여사

by 설여사

몇 년에 한 권 책을 읽을까 말까 하는 책 읽는 걸 싫어하는 설여사였다. 그러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작년 1월부터였다. 친한 친구가 1:1 독서모임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때마침 집 근처에 작은 책방이 생겼다. 목욕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마침 책방 문이 열려있었다. 그냥 갈까 고민을 하다 그냥 가면 또 언제 올까 싶어 목욕가방을 들고 용기를 내서 새로 생긴 책방을 들어갔다.

"저는 책 읽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책을 잘 못 읽습니다. 시도 싫고 소설은 더욱 싫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싶습니다. 아주 쉬운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책방지기는 나에게 얇은 시집을 한 권 추천해 주었다.

몇 해 전 친구가 선물로 준 시집을 읽고는 너무 난해하고 힘들어서 나는 시를 읽을만한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시를 포기했었다. 그래서 시집은 싫다고 했는데 시집을 추천해 주신다.

"시는 어려워서 싫습니다."

"이 시는 참 쉬워요.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망설이자 책방지기는 나에게 안 사도 좋으니 앉아서 읽어 보라며 시집을 건넨다. 마지못해 시집을 받아 들고 책방 한편에 앉아 시를 읽었다. 처음엔 그냥 그랬다.

'그래 뭐... 어렵지 않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슴이 몽글몽글 해지면서

'뭐야... 왜 이러지.... 왜 이 글들이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지... 나 그동안 잘 못 산 거 아닌 거지... 맞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느새 눈물이 맺혔고 그동안 애썼다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라고 시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책방지기에게 시집을 사겠다고 하며

"이런 게 시죠. 너무 좋아요." 하니 책방지기는 웃으며 두꺼운 소설책도 한 권 권한다. 나는 책방지기를 믿고 주병선 시인의 '인간에 대한 예의' 시집과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라는 벽돌처럼 두꺼운 소설책을 구입해 그날부터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두꺼운 소설책을 열흘도 안 돼서 다 읽고 나는 다시 책방으로 가서 얇은 소설책을 한 권 또 구입했다. 책방지기는 나에게 이것저것 책을 권했지만 나는 내 독서 욕망이 버거움에 다시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입한 책을 다 읽고 다시 오겠다며 갈 때마다 한 권씩을 사 왔다. 절대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책이 부담스러워 독서를 끊을까 봐 재미있고 어렵지 않은 책 위주로 읽어나갔다.

그리고 다행히 일 년이 넘게 나는 독서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나 독서 방법은 언제나 한 권을 다 읽고 또다시 시작하는 직렬독서였다. 한 권을 끝내지 않고 다른 책을 읽는다는 생각도 못했고 다른 책을 이것저것 읽을 능력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게 되었고 그때 다른 분들이 병렬독서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겐 생소한 병렬독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다른 책을 시작하는 나에겐 병렬독서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렬독서를 한 적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뿐일 거다. 고지식한 나는 책은 꼭 읽던 걸 다 끝내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예전에 책에 관심이 많고 책을 좋아했던 20여 년 전에도 서점에 가면 책을 욕심껏 여러 권 사 오긴 했지만 몇 줄을 읽다가 책이 읽히지 않으면 그냥 처박아 두곤 했다. 다시 그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다.


요즘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이젠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닌 인문학서적도 읽게 되다니 참 많이 발전했다. 처음엔 참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말들이 가득한 책을 읽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마냥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소로우가 호숫가에서 살며 느끼고 쓴 아름다운 글인데 그 속에는 많은 숨은 보석들이 있다. 책 속에 소로우가 호숫가에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삶의 진실을 찾으며 책을 보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이건 이런 말이 숨어 있는 것 같고 저건 저런 말이 숨어있는 것 같고.... 힘든데 자꾸 손이 [월든]을 편다. 글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소로우는 남의 시선과 허영에서 빠져나와 자연을 느끼며 소박한 삶을 즐기며 살라고 말한다. 작은 그릇인 나에겐 너무 큰 책이다. 근데 자꾸 읽게 된다. 그러다 지쳤다. 책을 절반정도 읽고 나니 휴식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TV를 봤다. TV가 재미있지 않다. 유튜브를 봐도 재미가 없다.

두리번거리다 얼마 전 [월든]과 함께 구입한 문보영작가님의 [일기시대]가 떠올랐다. 그래... 나도 병렬독서를 해보자. [일기시대] 책을 펴고 읽었다. 첫 페이지부터 재미있다. 해석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작가의 마음이 전달된다. 책을 읽다 책으로 휴식을 취하는 게 뭔지 이제야 느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얼마 전부터 병렬독서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대형중고서점에서 [월든], [일기시대]와 함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과 한강 작가님의 [디 에센셜] 책을 구입해 왔다.


마흔에 논어를 읽어야 했다지만 오십이 넘은 설여사는 더 늦기 전에 올바른 삶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밑줄을 치고 노트에 필사를 해가며 한 삼일정도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그 책은 꾸준히 옆에 두고 시간 될 때마다 읽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지난주 절에 갔을 때 스님이 선물로 주신 [채근담] 책이 있다. 지난해 찾아뵈었을 때도 한참 유행하던 조승우 한의사의 CCA(당근, 양배추, 사과) 주스에 심취해서 집에서도 만들어 먹고 조승우 한의사가 쓴 책을 읽어볼까 하던 설여사에게 스님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을 쓰셨는지 마침 조승우 한의사의 [채소. 과실식]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셔서 너무 놀랍고 감사했는데, 올해도 아침에 브런치스토리에서 지인작가분이 올린 [채근담] 책에 대한 글을 읽고 나도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절에 갔는데 이번에도 스님이 [채근담] 책을 선물로 주시는 거다. 우리 당숙스님이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관심법을 하시는 게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여튼 스님께서 선물해 주신 소중한 책을 집에 오자마자 읽어보았다. 논어와 비슷한 책이라서 한 번에 읽기는 힘들고 이 책도 논어와 함께 삶에 대해 생각하며 노트에 필사를 하며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두 책은 오래오래 내 곁에 있으며 삶을 논 할 것 같다.


그리고 작년 가을 홀로 제주여행 가서 발견하고 구입해 온 나에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준 박순우 작가님의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책도 다 읽지 못하고 책상 한편에 올려져 있다. 이 책은 3분의 1만 읽었는데도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어서인지 나머지는 내가 글 쓰는 것이 힘들어질 때 읽으면 나에게 또다시 에너지를 줄 것 같아서 아껴두고 있는 나의 비타민 같은 책이다.


그리고 두 달 전 지인작가님이 읽어보라고 빌려준 류시화시인의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 책도 있다.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 누군가 무심히 툭하고 던진 말들 같은 문장 안엔 그냥 웃으며 지나치지 못하는 인생의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나도 가끔 이런 말들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내 혼잣말을 묶으면 저런 하이쿠 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읽으면 실소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시다. 다른 책을 읽다가 잠시 잊혀진 책인데 이젠 맘먹고 병렬독서를 해보려 하니 이 책도 시간 될 때 열심히 읽고 주인에게 잘 돌려주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 책상엔 벌써 읽고 있는 책이 6권이나 되고 읽으려고 하는 책도 줄을 서 있다. 어이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렬독서를 하고 있었구나. 책 한 권도 겨우겨우 읽던 설여사가 일 년 만에 동시에 책을 6권이나 보며 책을 쌓아놓고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니. 대단한 발전이다.


TV 보는 걸 좋아하고 넷플렉스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던 설여사가 어느새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TV부터 켜던 설여사가 이젠 아침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기도 한다. 이젠 TV보다 책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날이 많다. 책을 좋아하게 될 줄은 일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어딜 가도 브런치스토리 작가님들의 글이나 책을 보고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고 책에 대해서 대화한다. 설여사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서 남이야기가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와 진정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나를 보며 내가 조금씩 커가는 게 느껴져서 좋다.


책과 글은 이런 건가 보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내 주변엔 언제나 손 내밀면 나를 울고 웃게 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성장시켜 주는 책들이 있다.


설여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설여사가 제일 좋아했던 동화책이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였다. 지인 아이들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이 책을 구입해서 선물하던 한동안 애착을

느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나도 그 여우처럼 책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여우 아저씨처럼 책을 읽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책을 먹어버리지는 않겠지만 소금과 후추를 뿌린 음식을 먹으며 어디서든 맛있게 책 이야기를 하는 설여사로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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