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과 딸을 출근시키고 아침 운동을 다녀와 늘어지기로 했다.
어제 감기도 다 안 나았는데 여행을 다녀왔더니 피곤하다. 혼자 간단히 아점을 먹고 tv를 봤다. 또 오전이 금방 지났다. 낮잠이 자고 싶었다. 소파에 누웠다. 낮잠을 자려다 문득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걸 깨달았다. 칠면조는 못 구워도 닭이라도 구워서 저녁에 특별 음식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일어나 단골 닭집으로 향했다. 구이용 닭을 한 마리 구입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닭이 안 익을지 모른다며 칼집도 내주시고 토막도 내어주신다. 언제나 친절한 사장님께 연말 잘 보내시라는 인사를 하고 근처 마트에서 소고기 한근도 사서 집으로 왔다.
벌써 3시다.
먼저 다진 마늘과 작년에 담은 생강술로 닭을 재어놓았다. 그리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소고기미역국을 끓였다. 어제 생일날 못 먹은 미역국이 못내 아쉬웠다. 하루가 지났지만 이제라도 끓여 먹어야겠다.
4시다.
오늘은 남편이 5시쯤 퇴근한다고 했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재어놓은 닭을 전기오븐레인지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4시 15분. 띠리리릭. 남편이 벌써 퇴근을 해서 집에 왔다.
"어! 일찍 왔네. 아직 배 안 고프지?"
"맛있는 냄새가 나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칠면조는 못 먹어도 닭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굽고 있어. 5시쯤 먹으면 되겠지?"
"나 오늘 저녁 약속 있는데."
"뭐? 무슨 약속?"
"내가 얘기했잖아. ○○이형 며칠 뒤 퇴직이라서 동기들끼리 저녁 약속했다고."
"어! 그날이 오늘이었어. 아니 무슨 약속을 크리스마스이브에 잡어?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족과 함께 몰라?"
"내가 지난주부터 계속 얘기했는데 왜 이래 갑자기. 나 조금 쉬었다가 6시 전에 나갈 거야."
그래 약속 잡은 거 알고 있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구나. 에구.
딸도 오늘 저녁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 집에 아들이 있다. 남편과 딸이 없어도 아들이랑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먹으면 된다. 남편 퇴근 전 아들에게 저녁에 먹을 샴페인을 사다 달라고 얘기했었다. 아들은 엄마 아빠의 말을 듣다가 샴페인은 어찌할까요? 하며 묻는다. 나는 아들에게 샴페인을 사다 달라고 했다.
술에 관심 많은 아들은 이마트에서 설여사가 좋아할 만한 가성비 좋은 샴페인을 사다 주었다.
5시 30분. 나는 오븐에서 잘 구워진 닭을 꺼냈다. 닭과 함께 익힌 감자와 꽈리고추와 방울토마토도 잘 익었다. 닭을 접시에 담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이 나오며
"저는 운동 갔다 와서 저녁 먹을게요."라고 말한다. 아들은 며칠 전부터 복싱을 배우러 다닌다.
엥~.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 맘을 가다듬었다.
'괜찮다. 나 혼자 맛나게 먹는 거야. 인생은 어차피 혼자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혼자 보낸다고 전혀 외로워하지 말자.
양배추샐러드도 만들고 와인도 땄다. 차려놓고 보니 너무 좋다. 오늘 음식이라도 없었으면 어쩔뻔했을까 싶다. 남편은 닭 한 조각을 맛보더니 자기 것 남겨놓으라며 집을 나섰다.
이제 완전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 샴페인도 딱 내 취향이다. 닭다리 하나를 뜯고 나서 어제 못 먹은 소고기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해치웠다. 배도 부르고 샴페인도 반 병이나 먹었더니 알딸딸하니 기분도 좋고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혼자만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도 참 좋다.
오늘 혼자 저녁 좀 먹으면 어떤가. 늘 함께하는 가족인데.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각자의 독립된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고 남편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니 그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특별한 시간인 거다.
설여사는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에 다시 닭을 구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고요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