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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Jan 09. 2022

태백

태백산 산행기

유일사 탐방로 주차장에 내려선다.

주차장은 이미 차량들로 가득 채워져 있, 등산을 준비하는 산객들로 분주한 모습이다.


태백산은 우리나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등산객들이 부쩍 늘었고, 특히 겨울에는 눈꽃 산행을 즐기려는 산객들로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되었다.


이번 산행은 유일사 삼거리, 장군봉, 천제단을 거쳐 당골 주차장으로 내려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진행된. 무리에 섞여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눈 없이 허옇게 드러난 맨땅 산행길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이 길은 눈이 쌓여 있어야 제 맛인데...." 아쉽기는 하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색다른 모습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져본다. 몰려드는 산객들은 전쟁통 피난 행처럼 긴 줄을 이으며 태백산 산정으로 밀고 올라간다. 유일사 삼거리에 이르러 화방재에서 올라오는 산객들과 합쳐지며 병목현상 생기 진행이 더디진다.


느려진 틈을 타 에너지 보충을 하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언덕길을 오른다. 곧 주목군락지에 이르지만 지난겨울에 봤던 눈 쌓인 모습과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 최고의 눈꽃 산행지 태백산에 눈이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처럼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모습이다.

늘 하얀 눈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만나다가 눈 없는 상태로 마주하니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화장을 짙게 한 모습만 보다가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보는 모습이랄까.

주목 1
주목 2
주목 3
주목 4

올 때마다 생각하지만 이곳 주목은 살아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살고도 부족하여 하얀 눈가루를 덮어쓰고 천 년을 더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주(朱) 자를 써 주목(朱木)이라 불리는 나무인데,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고, 태백산에 오를 때면 눈 설(雪) 자를 써 설목()이라 이름을 붙여줬던 바로 그 나무들이다. 화장기 없는 나무를 속살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밑동은 죽은 듯 시커멓게 변했 윗부분은 붉은 기운이 살짝 내비치고 있다. 생(生)사(死)를 함께하며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걸 보주목()이라는 이름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주목군락지 사이에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산중 식사를 하고 있다. 바람막이용으로 비닐 쉘터(shelter)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몇 명씩 둘러않아 식사 중인 모습도 몇 군데 보인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통인데 산 중 코로나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곧 장군봉에 이른다.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1567m)지만 대접은 제대로 못 받고 있. 오히려 천왕단이 있는 영봉에서 정상 인증을 받는 산객들이 더 많다.

비록 눈은 없지만 파란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장엄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정상 인증은 영봉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산객들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로 종종걸음 친다.

영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 이름만큼이나 웅장하고 거대한  돌비석이 우뚝 서 있, 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조금 전 장군봉에 비하면 줄이 서너 배는 더 길어 보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왕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산행 때는 하얗게 쌓인 눈에 홀리고, 차디찬 강풍에 놀라서 주변 살펴볼 겨를도 없었지만, 이번 산행은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다. "천왕단에 올라 태백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돌계단을 올라선다.


제단에는 단군을 높여 부르는 '한배검'이라 적힌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막걸리 잔과 과일, 초코파이까지 차려놓고 의식을 행하는 분이 계시다.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도 계속해서 절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떤 간절함이 있보인다.

천왕단 제단

쑥과 마늘 먹으며 백일 동안 기도한 곰이 인간으로 환생는 단군신화의 배경이 되는 우리 민족의 심리적인 영산()이고, 태백산맥의 중심에 우뚝 서서 한강과 낙동강의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지리적인 명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교시절 수없이 불렀던 교가 첫 소절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산이 아닌가.  아! 시원하고 장쾌하다. 태백산 정기받으며 그 옛날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올라 교가를 목청껏 불러보고 싶다.

"태백 ~ 산 높고도 굳은 뜻으로...."

영봉  정상

하산길은 당골 주차장 방향으로 바로 내려선다.

잠시 후 단종비각()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찬탈당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왕이라서 그런지 태백산에 슬픈 흔적이 남아있다. 단종이 죽어서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혼을 위로하는 제(祭)를 매년 지내고 있다고 한다.

몇 발짝 더 내려가니 이번에는 용정()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으로 국내 100대 명수 중 물맛이 좋다고 소문난 곳이고, 이 샘물을 신성하게 여겨 천제단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했다고 한다. 러나  맛을 볼 수 없 아쉽다.


지루한 하산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 당골 탐방안내소에 도착한다. 광장 한 편으로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탄광에서 사용하던 장비인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석탄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하고 안으로 든다. 거대한 구조물 안내판에는 '권양로'라고 적혀있고 '수직 갱도에서 석탄을 올리고 내릴 때 사용하는 구조물'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갱도의 깊이와 탄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 다시 한번 놀란다. 박물관 내부에는 석탄의 채굴과 석탄산업의 발전과정 그리고 옛 광부들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석탄박물관 권양로

어릴 적에는 흑백 TV 9시 뉴스를 통해 탄광사고 소식도 자주 접했다.

'막장'에서 채탄작업 중 갱도가 무너져 매몰되는 사고로 작업자가 실종되거나, 며칠 만에 구조되어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것에 실려 나오는 습이었다.


가까운 이웃에도 탄광에서 일하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신 분이 계셨다. 그땐 어려서 몰랐지만 진폐증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쯤 "그분도 진폐증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

석탄박물관 전시관

비가 와 습도가 낮고 우중충 날에는 연탄가스에 취해 하루 종일 맥을 못 추는 친구들이 눈에 띄곤 했던 고교시절 교실 분위기도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 시절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참 많던 시절이었.


최근에는 일의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으로 7년 전 '군함도'의 가슴 아픈 기억을 또 되살아 나게 하고 있어 탄광에 대한 관심이 더 가는 때이다. 석탄은 산업혁명을 이끌며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검은 진주지만 우리에겐 강제징용 인권유린 등 가슴 아픈 역사도 함께 있다.


버스는 아침에 타고 왔던 산객들을 모두 태우고, 서울 출발태백시내를 빠르게 가로지른다. 시외버스 터미널 앞을 나고 있지만 인적이 드문 황량한 모습이다. 수많은 탄광들이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태백의 중흥기를 이끌던 시절에는 외지로 드나드는 인파로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았던 추억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으며, 많은 광부와 가족들 이 터미널을 통해 떠났을 것이다.


그 많 광부들은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


버스는 두문동재 터널로 들어서고 곧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차창밖으로는 사북읍내 신식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첩첩산 시골 동네에 생뚱맞은 텔촌이 삐까번쩍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 옛날 화전()을 일구고 살았을 만한 오지마을호텔이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태백 시가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러나 '사북사태'라는 아픈 역사와 광부들의 애환이 서려있 곳이기도 하다. 그 시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저 호텔 뒤편 어딘가는 잊힌 기억과 역사가 묻혀 있을 것이다.


1980년 4월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  '동원탄좌 사북 사업소'에서 광부 4000여 명이 어용노조 퇴진과 30%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작된 투쟁이 경찰과 대치하며 평화롭던 광산촌이 무법천지로 변했던 사건이다.〈출처 : 태백석탄박물관〉

'광부들은 노동자들의 힘이 얼마나 폴발적이며 위력적인가를 입증하였으며 막강한 공권력을 밀어내고 짧은 기간이지만 지역점거라는 사상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사북 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의 사업장으로 급격히 확산되었으며 어용노조 반대투쟁과 노조민주화 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이원보(2004). 경제개발기의 노동운동』


그 후 석탄산업 퇴기 접어들며 지역 경제도 급격한 내리막을 걷게 되었지만, 1995년에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며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의 결실로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섰고 석탄산업 중흥기를 대신하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광부가 되어 큰돈을 벌어보겠다고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카지노에서 '잭팟'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인생 '막장'으로 내몰릴  있는 으로 변했다.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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