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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Nov 07. 2022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산행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조계종 7대 종정으로 추대된 성철 스님이 내린 법어(法語) 말미에 나오는 대목이다.

법어가 세상에 알려지며, 성철 스님 유명를 타기 시작했다.


깨달음이 부족한 속인(俗人)들은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지금도  성철스님을 상징하는 말씀으로 꾸준히 회자.


어쩌면 이 법어 한 마디 근현대사를 통틀어 불교계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스님 반열에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 성철스님 다비식(茶毘式) 있던 해였다. TV로 생중계되는 다비식을 관심 있게 봤고, 며칠 뒤 가야산을 찾았다.

남산제일봉으로 향했지만,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 중간에 발길을 돌렸던 기 아직도 생생하다. 

국립공원 백운동 탐방지구

산악회 버스가 백운동 탐방지구에 도착하고 서둘러 차에서 내린다. 두 번 강산이 변할 만큼 긴 세월다시 찾감회가 새롭다.


산행코스는 만물상 능선을 지나 칠불봉 상왕봉을 거쳐 해인사로 넘어는 길이다.

산악대장 말에 따르면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며, 설악산보다 더 힘들 수 다.


들머리에서 주골 계곡과 물상 능선길로 라진다.

계곡 쉽다는 말에  만물상 경치 포기하고 용주골들어선다.

쉬운 길이기는 하나,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가야 한다. 기는 경상북도 성주 땅이고, 도착지는 경상남도 합천이니, 도() 경계를 넘는 먼 길이.


시간이 훌쩍 지나고 서성재 고갯길에 이른다.

만물상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나는 곳이다. 힘들게 한 고비 올라온 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잠깐 여유를 부리 서늘한 기운이 줄기를 파고든다. 서둘러 배낭 챙겨 다시 걷기 시작하니 짧은 능선 지나고 칠불봉 오르는 계단이 나타난다.

칠불봉 오르는 계단

칠불봉 높이가 1433미터, 이 봉우리도 보통이 아니다. 엄청난 고통과 인내가 있어야 정상 정복의 희열을 맛볼 수 있 곳이.


허벅지 통증과 헐떡거리는 숨을 참아가며 철계단 부여잡고 낑낑거리는 길이 계속된다.


오르고 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드디어 가장 높은 칠불봉에 이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가을 하늘과 맞닿아 있으니, 그 어느 곳 보다 높이 오른 기분이 든다.


사방으로 보이는 시원한 조망과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바위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말한 대로 '불꽃처럼 뾰족한 바위가 연달아 얽혀있고, 허공으로 높이 솟았다.'


동쪽으로는 일백리 떨어진 대구 도심과 낙동강이 가느다랗게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겹겹이 쌓인 산줄기 맨 뒤편에 지리산 능선과 천황봉이 자리 잡았다.

칠불봉
칠불봉에서 바라본 우두봉

칠불봉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왕봉 보다 낮은 봉우리였지만, 지금은 가야산 최고봉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20여 년 전 당시 성주경찰서장이 등산을 좋아해 이곳 가야산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 오를 때마다 바로 옆 합천 땅에 위치한 상왕봉보다 더 높아 보인다는 의문을 가졌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칠불봉과 상왕봉 높이를 정확히 측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정밀측정을 했고, 칠불봉이 1432.4m로 상왕봉보다 2.6m가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분이야 말로 칠불봉을 가야산 최고봉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아니신가. 눈대중으로 미세한 차이까지 감지 하셨으니, 눈썰미가 대단하신 분이었던 것 같다.


시원한 조망 뒤로 하고 건너편에 선 상왕봉으로 향한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상왕봉에서 GPS로 발도장 찍고, 사진도 남겨야 하니 나로서는 꼭 가야 하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해인사 경내지역' 이라는 안내판 지나고, 철계단 올라 상왕봉 꼭대기에 도착한다.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 졌고, 칠불봉에 버금가는 조망이 일품이다.


평평바위 한가운데 움푹 페인 구덩이가 있고, 거기에 물이 고여있다. 우비정(牛鼻井)으로 불리는 이 구덩이는 소의 코에 해당되며, 물은 소가 콧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한다. 상왕봉의 또 다른 이름인 우두봉(牛頭)은 소 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두봉에서 바라본 칠불봉
상왕봉

100대 명산 중 68번째 인증을 마쳤고, 시원한 바람까지 실컷 쏘였으니 정상에서 볼일은 다 봤다. 이제 산 아래쪽 해인사를 향해 하산을 해야 할 차례다.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산죽 군락이 이어진다. 주변 나무들은 나뭇잎을 모두 버리고,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생명력 강한 조릿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푸른빛을 내고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 밟으며 조심조심 내려오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해인사에 닿는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곳과 여기저기 경내를 둘러보고 성철 스님 사리탑 앞에 선다.   

수다라전(팔만대장경 보관 건물)

널찍한 공간에 자리한 탑은 두 개의 반구형 돌 위에 반들반들한 원형 돌이 얹힌 모양이다.

성철 스님 다비식 때 110 여과의 사리가 나왔는데, 이는 부처님 다음으로 많은 양이라고 한다.

사리는 몸속에 생기는 결석이라는 주장과 오랫동안 성관계를 하지 않아 정액이 굳어서 생기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튼 훌륭한 스님 몸에서 사리가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해인사 일주문

해인사를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계곡도 만추의 아름다움이 절정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과 주변 단풍은 보기 좋은데, 가을 해가 짧고 마감 시간이 촉박한 게 아쉽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가야산은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스님께서 내리신 법문(法文)은 가야산과 그 앞을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가리키는 말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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