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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으악새

민둥산 억새 산행

by 하영일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고복수 선생의 노래 '짝사랑' 첫 소절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는 하늘 나는 새가 아니라, 억새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 노래에 나오는 '으악새'는 억새가 아니라 왁새(왜가리)를 뜻한다고도 한다.

그 새가 '왁새'인지, '억새'지는 가사를 쓴 사람이 알겠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으악새'는 억새의 방언으로 나온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는 '으악새'를 만나길 기대했지만, 한 시간이 훌쩍 지도록 으악새는 커녕 비슷한 것도 안 보인다. 한참 더 시간이 흐르고,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드디어 억새밭을 마주한다. 마치 숨겨져 있던 보물이 마지막에 드러난 것처럼, 그 광활한 억새밭은 정말 감동적이다.


이 거대한 억새밭은 화전민들이 남긴 유산이다. 한때 그들은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지만, 그들이 떠난 후 억새밭으로 변했다.


화전(火田)은 초목이 자라던 땅에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짓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 방법으로 일군 밭은 비옥한 토양과 비료 역할을 하는 재 덕분에 작물이 잘 자란다.

한때 화전민이 수십만에 달했으나, 1960년대 들어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제도적으로 화전 경작이 금지되었고, 그 후 화전민들은 탄광촌으로 흘러갔다.


억새풀 사잇길을 걷다 보니, 덕 아래로 크홀(sinkhole) 같 커다란 물웅덩이가 보였다.

돌리네

가까이 가 보니 마치 인공적으로 만 것처럼 둥글고 물이 가득 차 있다. 가 많이 오면 물이 차 오를 것 같은 모양이지만, 물이 넘친 흔적은 없고 수심이 꽤 깊어 보인다.


아무튼 산 꼭대기에 생긴 물구덩이가 신기 따름이다. 지질학에서는 이런 것을 돌리네(doline)라 부른다.

'석회암 지표가 빗물에 녹아 땅이 꺼지며 생기는 현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민둥산에는 이런 돌리네가 12개가량 발달해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발구덕 마을에서는 일하던 소가 구덩이에 빠지고, 집이 기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구덕'은 구멍이라는 뜻으로 돌리네를 의미한다. 발구덕 마을에 8개의 구덕이 있다.


'지질학자들 조사에 의하면 둥산 지하에 물과 뻘이 고인 거대한 석회석 동굴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민둥산에서 거대한 석회 동굴이 발견고, 종유석으로 가득한 동굴 내부를 구경하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짧은 언덕 지나 1119 미터 정상에 올라선다. '민둥산 억새축제' 기간임을 말해 주듯 정상석 앞에 수 십 명 산객들이 인증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억새 능선

사방으로 터진 조망은 막힘 장쾌하다. 함백산 꼭대기에 구름이 걸쳐진 모습과 하이원리트 스키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쌓인 산그리메가 참 보기 좋 곳이다.


하늘도 우리의 정상 정복을 반기는지 숨었던 해가 구름 속을 나와 억새 능선을 밝게 비준다. 증산 읍내 방향으로 길게 뻗은 능선 전체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등산로를 통해 억새를 보러 온 많은 산객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정상으로 향하는 억새 길

민둥산은 이름처럼 크게 내세울 것 없는 그저 민둥민둥한 산이었지만, 억새가 유명세를 타며 많은 사람들이 모들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민둥산에 불 지르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한 세상이 되었고, 민둥산을 찾는 산객들 얼굴에도 웃음꽃 활짝 다. 민둥산 으악새도 가을바람에 리듬 맞추며 흥겹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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