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俗離山)이라 하면 으레 충청도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올 때마다 법주사 앞을 지나 문장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화북 탐방소에서 문장대까지 3.4㎞,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짧은 길이다.
이 코스는 가장 적은 노력으로 속리산생김새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등산로다.
산 이름처럼 속세(俗世)의 일은잠시 내려놓고속리산(俗離山)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한 언덕길을 한 시간 남짓오르니 커다란 '쉴 바위'가 나타난다. 시원하게 터진 산자락 전망이 좋은 곳이다. 누가 이름 지었는지 '쉴 바위'란 이름이 딱 좋다.
쉴 바위 이후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오르막 길은 언제나 고행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고, 널찍한 공터가 나타난다. 문장대와 천왕봉 그리고 법주사로 갈라지는 사거리 길이다.
속리산에서 산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며, 오른쪽으로 200m 더 가면 문장대에 이른다. 정상 바로 코앞까지 왔으니, 허기진 배도 채울 겸 평평한 바위에 털석 주저앉아, 배낭을 풀고 도시락을 꺼낸다.
문장대 사거리
사방으로 터진 산정에서단풍 구경하며도시락 까먹으니, 밥 맛이 꿀맛이거니와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디저트로 과일까지 해치우고, 문장대 앞까지 단박에 뛰어오른다.
정상석에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삼십삼 번지'라는 주소가 새겨져 있다.
문장대를충청도 보은 땅으로여기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곳은 경상도상주 구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라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워 자국 영토임을 널리 고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정상석 뒤로 많은 산객들이 철계단을 통해문장대에 오르고 있다.인공구조물 덕에 문장대 꼭대기에 쉽게 설 수 있지만, 바위에 억지로 박힌 철심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로 불렸다.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정상에 올랐는데,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불리게 됐다「출처 : 속리산 국립공원」
문장대
이처럼 속리산에는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속리산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세조 행차 때 나뭇가지를 스스로 들어 올려 가마가 지나도록 도운 공(功)으로 장관급 벼슬을 하사 받은 정이품 소나무가 있다. 그리고 세조가 다니던 길로 스토리텔링을 입힌 세조길, 또 세조의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목욕소'를 지나 이곳 문장대에서정점을 이룬다.
세조는 어린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형제들까지 죽인 피비린내 나는 군주였다. 그 원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함인지, 유교적 강상 윤리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왕 답지 않게 유독 불교를 가까이했다. 세조가 문장대에 앉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읽었다는 야사(野史)가 전해지는 것도 임금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도리를 깨우치게 하려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살려 두지 않겠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속에 나타나 이런 막말을 퍼붓고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현덕왕후의 저주로 세조는 스무 살 먹은 동궁을 잃었고, 뒤를 이은 예종도 재위 1년 만에 승하했다.
세조 본인도 현덕왕후가 뱉은 침 때문에 온몸에 몹쓸 피부병이 걸려 고생을 많이 했다는 전설이전해진다.
철제 난간 붙잡고 문장대에 올라 서니, 파란 가을하늘 아래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이런 출중한 경치가 있으니, 세조가 병든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라왔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속리산봉우리들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높이로 보면 천왕봉 보다 낮지만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서른 평은 충분히 될만한 널찍한 바닥에움푹 페인 구덩이가 여러 개 있고, 구덩이 안에 물이 고여 있다.
옛 문헌에 의하면 문장대구덩이에 고인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고,흘러내리는 방향에 따라 낙동강, 금강, 한강으로 흘러드는 삼파수(三派水)라고 한다.
문장대
남쪽으로 문수봉과 신선대를 지나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뻗어있고, 가을이 깊어가는모습이 뚜렷하다.
산에는 언제나 사계절이 있기에 봄. 여름이 다르고, 가을이면 또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속리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문장대를 뒤로 하고 법주사 방향으로하산길을 잡는다.
법주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화북에서 올라온 등산로에 비해 두 배 긴 거리다.
지루한 내리막길 한참을 걸어 복천암(福泉庵) 앞에 이른다. 복천암은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아버지 세종의 명을 받아 석가모니의 일대기와설법을 한글로 번역한『석보상절』을 편찬할 때부터 인연이 깊은 곳이다.
왕이 된 후에도 이곳에 머물던 신미대사의 초청으로 사찰을 방문했다.
복천사
경내로 들어 극락보전 내부를 구경하고, 세조가 마셨다는 복천암 샘물 한 바가지 마셔본다.
물 맛은 별반 다름이 없지만, 몸에 좋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애써 한 모금 더 마시고 바가지를 내려놓는다.
복천암 돌아 나와 이름도 재밌는 '이뭣고 다리'건너세심정 앞에서세조길이 시작된다.
계곡을 끼고 새로 만들어진 자연친화적등산로이다.황마 매트와 목재데크로 잘 다듬어진길이라 발걸음이 편안하다.
세조길
숲길 걸으며 사색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법주사 앞에 이른다.
속리산에 올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법주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湖西第一伽藍'이라 적힌 일주문을 지나 다시 속세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