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인 변산반도 국립공원 안에 있다.
'변산반도'란 지명에 익숙하기 때문에 '변산'이 산 이름으로 금방 와닿지 않지만,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이름이 올라 있다.
산과 바다의 경치를 아우르는 곳으로,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에 한 곳으로 기록될 정도로 풍수가 좋은 곳이다.
내변산 매표소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이라기보다 둘레길 걷기에 가까운 평탄한 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첩첩산중 골짜기로 빨려 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평지가 끝나고, 낮은 계단 올라서니 아담한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얀 도화지를 꺼내 그림이라도 한 장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직소보 잔잔하게 이는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시리게 하고, 호수 옆을 지나는 오솔길은 연인들 데이트 코스처럼 운치와 멋이 있다.
호수를 돌아가니 이번에는 직소폭포가 보인다. '직소폭포를 보지 않고 변산을 봤다고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했을 정도로 변산을 대표하는 절경인데, 긴 가뭄 탓에 힘없는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졸졸졸 흘러내린다.
아쉬운 모습 뒤로 하고 폭포 위로 올라가니, 지금까지 모습과는 대조되는 고요한 평지가 나타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졌고, 입구는 거대한 폭포로 가로막힌 이런 곳은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나,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理想鄕)을 꿈꾸는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딱 좋아 보인다.
외부 침략을 피할 수 있고 자급자족까지 가능하니, 정감록에서 이야기했던 변산의 십승지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그 옛날 홍길동이 이끌던 활빈당 같은 도적떼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허균이 변산에 귀양살이하며 홍길동전을 집필했으니, 이곳에 은거하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평지가 끝나고 재백이다리 지나 본격적으로 언덕길이 시작된다. 고갯마루에 올라 서니 시원한 바다 조망이 터진다. 바닷바람 맞으며 잠시 여유를 부리고 다시 관음봉으로 향한다.
가파른 능선길이지만, 곰소만 경치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코스라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관음봉 삼거리 지나고 곧 정상에 오른다. '변산반도 관음봉'이라 적힌 정상석이 있고, 나무 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라 서니 곰소만 전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압권이다.
줄포에서 시작한 갯벌이 곰소를 지나고, 서해바다로 뻗어 하늘까지 맞닿아 보인다.
'변산'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향 친구와 싸움박질하던 곳이 바로 저 뻘밭일 것이다. 곰소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죽도 주변으로 작은 돛단배가 점점이 뜬 모습도 한 폭 그림처럼 아름답다.
저기로 내려가 고깃배 잡아 타고 낚싯대 드리운 한가로운 어부가 되어 보면 어떤 느낌일까. 벌겋게 물든 저녁노을에 입맞춤하며 서해 바다로 지는 석양에 취하고 싶다.
그 누군가 '변산은 가난해서 보여줄 게 노을밖에 없다.'라고 했지만, 변산에 노을만 있는 게 아니다. 변산에는 걷고 보고 맛 볼 꺼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