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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Dec 24. 2022

청계산 매봉

청계산 산행기

이틀 연속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3도 이하로 내려갔, 호남 일부지역에서는 60cm가 넘는 눈폭 쏟아졌다.


주말에 설산 구경을 가겠다 일주일을 별렀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 소풍 기다리던 꼬맹이가 못 가게 된 심정이 이런 마음일까.


하얀 눈으로 뒤덮인 소백산 죽령에서 비로봉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걸을 계획이었다. 추운 날씨와 칼바람에 맞설 생각으로 방한용 장까지 새로 준비했다. 그러나 어젯밤 일정이 늦게 끝난 바람에 포기 결정을 내렸다.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면,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16킬로 넘는 거리를 완주하는 게 쉬운 일 아니다. 도전정신도 좋지만 물러 설 때를 알고, 빨리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산에 대한 무모한 도전정신은 사고를 부를 뿐이다.


장쾌하게 뻗은 능선을 생각하며, 며칠 설렜던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참고 기다리다 보면 또 좋은 기회가 반드시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 수록 그날의 기쁨도 커지고, 하얀 능선 또한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달력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치고 기다리는 동안 소백은 온전히 내가 맡아 놓은 산이고, 나의 등산일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 된다.

  

작년 이맘때 덕유산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추위에 벌벌 떨었고, 그 일로 동상치료받느라 병원에 몇 달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겨울산은 항상 위험이 도사린다. 철저한 준비 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행동만큼이나 위험하다.

매봉으로 오르는 계단

그렇긴 하지만 방구석에 그냥 있기에는 좀이 쑤신다. 숙제를 안 한 학생처럼 맘이 편치 않아, 다시 배낭을 챙겨 가까운 청계산으로 향한다.


소백산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산에 도전하기 전 훈련 차원에서 올라 보기에 좋다'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한다. 산악인들 에베레스트에 등정에 나서기  낮은 산에서 훈련하며 체력을 길렀듯이 말이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인 것처럼 생각날 때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산이 좋은 산이다.

높지 않아도 지하철 타고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청계산이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명산인 셈이다. 오늘은 꿩 대신 매 잡으러 청계산 매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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