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은행나무

용문산 산행기

by 하영일


선지. 양. 콩나물이 꽉 찬 양평해장국 한 뚝배기로 든든하게 속을 채운다.


술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은 술 마신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해장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 그중

서 양평해장국이 손꼽히는 해장 메뉴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먹은 소주병 숫자처럼 해장국 그릇 수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 생각에 쓴 미소가 지어진다.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봉이고, 험준하기로 소문난 산이니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주말 주차장은 여유가 많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용문산은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다. 정상에는 군부대 철탑이 등대처럼 우뚝 솟아 꼭대기임을 알리고 있다.


입장료 내고 용문사로 들어서니 널찍하게 조성된 공원이 펼쳐진다. 한적한 공원에는 용문사 방

향으로 오르는 배낭 멘 등산객들 외에는 인적이 뜸하다.


비탈길 따라 잠시 걸으니, 용문사 앞에 이르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亡國)의 한(恨)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1100년 된 전설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다.


높이가 42m에 이르고 둘레 15m나 되는 엄청난 나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바닥에는 떨어진 은행이 지천에 널려 있다. 은행을 매년 350kg 정도 수확한다고 하니, 천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신령한 나무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용문사 은행나무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것도 대단한데 아직까지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때는 서기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의 세력에 눌려 더 이상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지금 나라가 고립되어 위태로운데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이 죽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라고 하며 고려에 항복하고자 하는 뜻을 대신들 앞에서 밝힌다.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어떻게 천 년의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가벼이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함을 청해 보지만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을 더 이상 죽일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태자는 종묘(宗廟)에 하직인사를 하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풀을 뜯어먹고 살며 입었던 비단옷을 찢어버리고 삼베옷을 입고 일생을 보내게 된다 『삼국유사』


훗날 사람들이 그를 마의 태자(麻衣 太子)라 부르게 된 것도 그가 입었던 삼베옷(麻衣)에서 유래하였다


등산은 은행나무 뒤로 돌아 오르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요 며칠 비가 온 탓에 계곡은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꽉 들어찬 모습이다.

울퉁불퉁한 돌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조심스럽게 내 디디며 올라간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가 몇 번 있고, 그때마다 계곡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물이 많은 탓에 계곡은 작은 폭포의 연속이다. 날씨에 따라 계곡수가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으나, 수 천년 수 만년을 끊임없이 흘렀고, 물소리 또한 태고적부터 들렸을 골짜기다.

용문계곡 무명폭포

저 아래 주차장에서 바라보던 용문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계곡의 모습이다.

겉보기에는 듬직하고 순한 민둥산의 모습이었으나, 속살은 날카로운 돌을 가득 품은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시간 여 오르니 마당바위가 보인다. 큰 바위 윗부분이 마당처럼 평평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고, 지나는 등산객들이 바위에 올라서 잠시 쉬어 가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마당바위

또 오르막길 이어지고, 날카로운 돌들이 산행을 더디게 만든다. 밧줄 잡고 네발로 오르다시피 하는 가파른 길이다.

눈. 비 오는 날에는 안 오는 게 상책일 듯한 험한 산길이다. 등산 스틱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가파른 언덕 한참을 오르니 능선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아직 정상까지는 900미터 남았고, 해발 고도는 860m를 가리킨다. 평상에 앉아 잠시 쉬며 한 숨 돌린다.

용문산 정상부근 능선

다시 정상 정복에 나선다. 능선길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고, 생명을 다한 단풍은 등산로 바닥에 떨어져 산객들에게 낙엽 밟는 즐거움까지 더해주니, 아래쪽과 달리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하늘도 보이지 않던 모습과 달리 양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터지고, 정상 봉우리가 보이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마지막 계단 올라서니 정상 나무데크에 이른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용문산의 산세는 정말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 그대로다.


발아래에서 뻗어 내린 산 줄기는 상원사와 용문봉 방향으로 용트림하고, 능선 너머 계곡에는 운무(雲霧)가 오락가락하며 계곡을 채웠다 비우기를 반복한다.

용문산 정상 운해

오늘은 양평해장국 한 뚝배기로 배를 채우고, 계곡의 맑은 물과 너덜바위, 가섭봉의 시원한 풍광으로 공허한 마음을 가득 채웠다

용문산 정상


2022.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