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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 억새

신불산 산행기

by 하영일

신불산은 남알프시에 놓인 산 중에 두번째로 높은 산이며 우리나라 3대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을 억새가 피는 시절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산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가을바람에 맞춰 살랑살랑 춤추는 풍경을 한 번 본 사람은 그 모습에 반해 또 찾게 되니 해가 갈수록 인파가 늘어나고 있다.


이맘때면 활짝 피는 억새는 햇빛이 잘 드는 산야의 구릉지대에서 무리를 이루고 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모양이고 키가 1~2m 정도로 자란다. 굵고 짧은 뿌리가 있으며, 여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자라난다.


9월경에 줄기의 끝에서 부채모양으로 꽃이 달린다. 흔히 갈대와 혼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우면 억새, 꽃의 색깔이 갈색에 가까우면 갈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억새와 갈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달뿌리 풀과 갈대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갈대와 달뿌리 풀은 서있기가 힘들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있는 억새는 견딜만했다. ‘와, 시원하고 경치가 좋네,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 참 좋아, 난 여기서 살래’ 억새의 말에 갈대와 달뿌리 풀은 ‘난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더 낮은 곳으로 갈래’ 하고 억새와 헤어져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들은 내려가다가 개울을 만났다. 마침 둥실 떠오른 달이 물에 비치는 모습에 반한 달뿌리 풀이 말했다. ‘난 여기가 좋아, 여기서 달그림자를 보면서 살 거야.’ 달뿌리 풀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니 둘이 살기엔 너무 좁았다. 그래서 달뿌리 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으로 걸어갔는데 앞이 그만 바다로 막혀버렸다. 갈대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한다


갈대 산행 시작은 '억 소리 날만큼 오르기 힘든 고개라서 등억(登億)이라 불렀다'는 등억리에서 등산 채비를 한다. 신불산, 간월산으로 오르는 길목이라 아침부터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홍류폭포 지나 공룡능선 오르고, 정상 거쳐 신불재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로 방향을 정하고 출발한다.

언덕길 잠시 오르니,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홍류폭포 모습이 보인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고 치마폭처럼 넓게 펼쳐지며 폭포 아래에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

홍류폭포

폭포 옆으로 돌아 산정으로 향하니, 밧줄에 의지하며 힘겹게 오르는 질퍽한 언덕길 이어진다.

몇 번의 힘든 고비를 넘기고 어렵게 신불 공룡능선에 올라선다. 칼바위라 불리는 날카로운 바위가 나타나고 바위 능선이 저 멀리 정상까지 이어지는 게 보인다. 오른쪽은 간월재 방향, 왼쪽은 영축산 방향으로 멀리까지 내달리고 등 뒤로는 언양 시가지 모습이 훤히 내려 보인다.

신불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설악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불산에도 새끼 공룡 정도 되는 울퉁불퉁한 바위능선이 숨어 있고, 날카롭게 솟은 바위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이곳에도 불그스레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가을바람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파고 드니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신불 공룡능선 상부

거친 능선 통과하니 어느덧 정상에 선다. 출발한 지 두 시간 여 만에 여기까지 올라왔다. 무장공비 수준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주말마다 산행을 하니, 산을 타는 체력도 무장공비가 된 듯하다.

사방으로 트인 정상 풍경이 일품이다.

영축산 방향 능선

아! 멋지다 ~

널찍하고 평평한 정상에는 산객들로 북적인다. 잘 정비된 나무데크에는 끝없이 이어진 영남알프스 능선을 바라보며, 황홀감에 빠져든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신불산 정상 전망대

남쪽으로 신불재 지나 영축산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까마득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간월재로 넘어가는 능선이 연결된다. 서쪽으로는 깊은 골이 움푹한 모습이다. 밀양. 울산. 양산. 청도에 걸쳐 형성된 1000미터 넘는 9개 산이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 만하다고 해서 흔히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줄기 가운데 우뚝 선 1209미터 고봉이다.


지금은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6.25 때는 영남지역 최대의 빨치산 근거지로 남도부 부대가 활동했던 곳이 아닌가.

신불산은 슬픈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다. 고봉들이 모여 있고, 깊은 계곡이 천혜의 은신처를 제공하니, 빨치산 활동에 최적지가 되었을 것이다.

왕방골 깊숙한 골짜기,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는 죽림굴,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저승골 등 숨겨진 속살이 많지만, 여기서 구경하는 겉모습도 나에게는 호사다. 영남알프스 완주와 함께 신불산의 숨은 비경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어느새 정상석 앞에는 인증사진 찍으려는 등산객 줄이 길어졌고, 신불산 비경을 뒤로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신불산 정상석

산줄기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걸으니, 부드러운 능선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간월재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신불산에서 간월재로 이어지는 능선

빛 융단을 펼친 듯한 억새군락은 파란 가을 하늘과 맞닿았고, 일렁거리는 억새풀이 하늘을 쓸어 내니 간월재에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지금이 은빛 억새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들고, 간월재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억새축제가 열릴 때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간월재 억새평원을 울긋불긋하게 수놓고, 은빛 억새풀은 해를 머금은 채로 한 줌 가을바람에 춤을 춘다.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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