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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등산 산행기

by 하영일


무등산(無等山)


SRT 타고 천리길을 한 시간 남짓 내달려, 빛 고을 광주 땅에 발을 디딘다. SRT역사가 무등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지하철 타고 도심을 가로질러 무등산 근처 학동. 증심사 입구역에 이른다.


1번 출구 빠져나와 주변을 살피지만, 무등산은 어느 방향인지 감(感)이 잡히지 않는다.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께 여쭤 보니 100여 미터 앞쪽을 가리키시며, 저기서 버스 타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광주 도심에 있는 천 미터가 넘는 산이면 보일만도 한데… 무등산은 어디로 숨었길래?


버스는 이내 무등산 입구에 도착하고, 등산객들과 함께 쏟아진다.


아 ~ 반갑다 무등산아.

5년 만에 다시 찾은 무등산 입구 모습은 예전 그대로나, 지나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게 달라진 풍경이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던 식당도 그대로 보이니, 이번에도 그 식당으로 들어간다.


무등산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 평탄한 아스팔트 길 한참을 올라 증심사에 이른다. 지나치기 아쉬운 마음에 증심사 경내를 대충 둘러보고, 산행을 재촉한다.


짧은 언덕길 올라서니,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 평평한 쉼터가 나타나고, 여기저기 흩어져 쉬고 있는 등산객들 모습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무등산 산행 때 이곳에서 쉬면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던 곳이고, 장불재까지 “무등산 노무현길”로 명명하여 대통령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당산나무 쉼터

중머리재 방향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지만, 주말 산행이라 등산로가 분주하다.

잘 정비된 등산로 덕에 어려움은 없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어 답답함이 더 크다. 등산객이 많으니 이런 불편함이 따라온다.


한참을 올라 중머리재에 이르니, 널찍한 평지에 등산객이 100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인다.

시골 장터 같이 분주한 분위기에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출발한 지 한 시간 훌쩍 넘겼는데, 아직도 해발고도 617 미터를 가리킨다.

"이거 보통 산이 아니구나…"

중머리재

장골재 방향으로 돌계단을 하염없이 또 오른다. 추분(秋分) 지난 가을이지만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배낭 무게에 짓눌린 발걸음은 무디어진다. 도심에 있는 산이라고 동네 뒷산 정도로 여길 산이 아니다. 해발 고도를 1000미터를 올려야 하는 엄청난 산이다.


그때 광주천 발원지 안내판이 보인다. 장불재에서 스며든 물이 이 샘골에 모여 비로소 지면으로 흘러나오고 계곡을 따라 광주천으로 모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에는 물맛이 좋고 시원하여 콩가루를 타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시절에는 산행할 때 콩가루를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었던가 보다.


두 번째 고갯마루 장골재에 올라서니 널찍한 평지가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확 몰려온다. 중머리재에 비하면 등산객 숫자가 삼분지 일에도 못 미치지만,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은빛 억새풀과 시원한 조망이 더 낫다.

장골재

산정(山頂) 방향으로 입석대와 서석대 주상절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광주시내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득한 그 옛날 광주를 오가던 나그네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을 무등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객들이 대신 자리 잡고 구름과 함께 쉬어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산상 연설을 한다.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역사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눈앞의 이익이 이익입니다.”(2007. 5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장불재 산상 연설문 中)


다시 마지막 고지를 향해 용을 쓴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파란 하늘 아래 살랑거리는 은빛 억새풀이 가을 산행의 참 맛을 불러온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주상절리 입석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불에 그을린 돌기둥을 줄지어 세운 듯한 형상이 신기하다.

입석대

돌기둥 뒤로 돌아 너덜겅 오르니 정상이 지척에 보이고, 가을바람은 등 뒤에서 빨리 가라 떠민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건너편 백마능선이 주마등처럼 뻗어 있고, 발아래 억새풀은 춤을 춘다.

서석대로 오르는 너덜겅

서석대에는 배낭을 벗어 젖힌 산객들이 여기저기 다리를 뻗고 앉아 청명한 가을 하늘에 몸을 내 맡기고 있고, 발아래로 뻗은 무등산 줄기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광주를 품고있다.

서석대에서 바라 본 광주 시가지

가을바람과 파란 하늘이 참!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원한 가을바람. 언제나 이런 바람만 불어라…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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