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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예산 가야산 산행기

by 하영일

상가리에서 가야봉로 오르는 길 육관대사 손석우 선생의 묘가 있다.

살아생전 이름난 풍수가였고, 당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터"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르기도 했던 사람이다.

육관대사 묘

묏자리 전문 지관의 무덤은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가 컸던 탓일까. 그의 명성에 비해 너무 평범해 보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겉모습과 달리 통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대명혈(大明穴)이라도 숨어 있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아! 경치 참 좋다.

동(東)으로 내포 들판, 서쪽으로 해미 읍내와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내륙의 너른 평야와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조망이 좋다. 런 풍경은 바닷가에 놓인 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다.

일찍이 이중환이『택리지』에서 '충청도는 내포가 가장 낫다.'라고 극찬했다. 그가 이곳을 가장 좋은 곳으로 치켜 세운 것도 풍부한 해산물과 질 좋은 소금 그리고 저 들에서 나는 곡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야산 능선

바닷바람 맞으며 능선을 게 타니 느새 옥양봉에 이른다. 바다전망이 좋았던 앞선 봉우리들과 달리 상가리 쪽 조망이 시원하다.


저기가 조선 최고의 명당자리였고, 흥선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가 있는 곳이다.

남연군은 살아생전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죽은 후 자신의 묘 이장과 독일 상인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야사에 따르면 세도정치로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세도가에 의해 휘둘리던 조선말 당대 최고의 지관 정만인이 흥선을 찾아와 '가야산 자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오서산 자락에는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릴 수 있는 터가 있다.'는 것을 알려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숨긴 채 몸을 낮추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던 흥선은 "2대 천자(二代天子之地)가 나는 땅을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야산 자락에 있는 터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천자가 나올 그 자리에는 이미 천년고찰 가야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흥선의 의지를 꺾을 만한 장애물은 못되었다. 흥선은 500리나 떨어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移葬) 하여 명당자리를 가질 계획을 세웠다.

남은들 상여(남연군의 시신을 운반했던 상여)

영화 '명당'에서는 2대가 지나면 자손이 절손되는 흉지라고 막아서는 천재지관 박재상의 만류를 뿌리치고, 흥선이 가야사(伽倻寺)를 불태운 후 기어이 묘를 쓰고 만다.


부친의 묘가 도굴당하고 이장(移葬)될 것이 두려워 석회와 송진가루를 썩어 석자 두께로 관을 덮으며 도굴에 대비한 덕에 아버지의 무덤은 지킬 수 있었다.


정만인의 말대로 '천자가 나는 명당'을 차지한 덕분인지, 십여 년 후 흥선의 아들 명복(命福)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바로 고종이다.

어린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움켜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친의 묘 이장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고종의 뒤를 이어 손자 순종도 왕위를 계승했으니, 지관의 말대로 2대에 걸쳐 천자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두 황제를 끝으로 500년을 이어온 조선(朝鮮) 왕조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명당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믿음이 중요다. 영화 속 대사처럼 '지관은 땅으로 먹고사는 게 아니라 혀로 먹고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길지(吉지)가 되느냐 흉지(凶地)로 전락하느냐는 땅이 아니라 자기 하기 나름일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남연군의 묘를 이곳이 아닌 오서산 자락 만대 영화(萬代榮華)를 누리는 땅으로 옮겼다면, 과연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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