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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청계산 산행기

by 하영일

계산은 서울의 장 남쪽에 놓여있고 성남, 과천, 의왕에 접해있다.

풍수적으로는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되지만,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북한산이 조선 도읍의 주산(主山)으로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반면, 청계산은 고려의 옛 충신들이 숨어지내며 국(亡國)의 (恨)을 달랬던 곳이다.


옛골을 출발해 능선길로 접어드니,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는 등산화에 이리저리 차이고, 나뭇잎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려 준비 이다.

이수봉 가는 길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등산로에는 이름표를 하나씩 단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표식이다.


"코로나가 산으로 옮겨왔나."


자세히 보니 소나무가 재선충 예방 주사를 맞았다는 표식이다. 평생 건강할 것처럼 보이는 소나무도 전염병 때문에 세상 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나무들도 참고 견디다 보면, 세상을 위해 크게 쓰일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한 시간 여를 올라 이수봉에 도착한다. 해발 545M 이수봉을 알리는 큰 돌비석이 서 있고,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되었던 정여창이 이곳에 숨어 위기를 두 번이나 모면하 붙여진 이름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수봉

이수봉 뒤로하고 망경대로 향하니 의왕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등산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서울 근방 몇 개 도시에 걸쳐 있어 능선을 타고 넘으며 도시의 풍경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청계산의 매력이다.


청계사와 석기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으로 내려가니, 소나무 숲길 따라 오르막 계단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는 달리 석기봉으로 통하는 길은 험하고 인적도 드물다.


이수봉이 흙으로 덮인 봉우리인데 반해 석기봉은 큰 바위가 우뚝 솟은 봉우리다.

꼭대기에 올라서니 지나온 능선과 이수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파트로 뒤덮인 도시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청계산의 최고봉인 망경대가 가까이 서 있다.

망경대

석기봉에서 내려 망경대 방향으로 움직이니, 울타리 옆길 지나 망경대 바로 아래에 이른다.

어설픈 밧줄이 있기는 한데, 바위로 올라가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바위에는 먼저 도착한 산객들이 대여섯 명 있지만 등산객들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닌 듯하다. 하기야 나도 수십 번 청계산에 왔지만, 이곳은 처음이 아니던가.


바위틈에 박힌 나무와 늘어진 밧줄을 잡고 어렵게 바위에 올라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고 그랬던가. 어렵게 올라선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시원한 풍광을 보여준다.

관악산이 바로 옆에 있고 경마장이 선명하게 보인다. 서울뿐만 아니라 저 멀리 북한산도 어렴풋이 모습을 내 비춘다.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서울

옛 고려의 충신들이 이곳에 올라 지난날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을 바라보던 장소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발아래 두고, 북한산 너머 개성의 하늘을 보며 고려 복원을 꿈꿨을 지도 모른다.


매봉으로 가는 길에 혈읍재를 이른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鄭汝昌)은 스승 김종직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부관참시(剖)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넘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윽고 매봉에 도착하고, 인증사진 한 장으로 증거를 남기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원터골로 내려가는 길 마주오는 등산객들로 우 혼잡스럽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턱 아래 걸치고 숨을 몰아쉰다.

매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한 걸음 한 걸음 딛는 나무계단 등산스틱에 수 없이 찔리고 등산화에 밟서 수많은 칼질에 움푹 페인 도마처럼 상처 깊다.


가을바람 께 걷다 보니 어느새 종착지인 원터골에 이른다.


202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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