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과 소요시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세상 참 좋아졌다. 차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다니...."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면 가끔 독립기념관 둘레길을 찾는다.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병천 순댓국이라도 한 그릇 할 때면 더없이 좋다.
"눈과 입이 즐겁고 마음까지 힐링되니 걷기 코스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한 가지 단점은 오고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이다. 차량 시동을 걸면 가장 먼저 소요시간부터 확인하는 이유다. 한 시간 안쪽이면 바로 달려가지만, 한 시간을 넘어가면 목적지를 변경한다.
고속도로가 막히는 날은 답답함을 넘어 짜증이 난다. 정체가 심한 날은 나도 모르게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나 좀 하지...."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정체를 피해 전용차로를 쌩쌩 달리는 차량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짙은 썬팅으로 위장한 카니발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목천 IC를 빠져나와 독립기념관 주차장에 도착한다.
정문 앞으로 걸어가며 겨레의 탑 사이로 흑성산 정상과 눈을 맞춘다.
여기서 보면 탑, 본관 건물, 흑성산 봉우리가 일직선에 놓인 것을 알 수 있다. 설계 단계부터 주변 지형과 풍수를 고려했음이 짐작된다.
옛부터 이곳은 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죽자 후손들은 이곳에 묘를 쓰려했다.
그러나 '이곳은 이삼백 년 뒤에 나라에서 요긴하게 쓸 땅이니, 여기에 묘를 쓰면 이장을 해야 한다'라는 지관의 말에 따라 십리쯤 떨어진 곳에 묘를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 건설 후보지 중 한 곳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때 이곳에 독립기념관을 건립했다.
독립기념관 준공을 며칠 앞두고, 큰 화재가 발생해 개관이 이듬해 광복절로 늦춰졌다. 그 화재 때문인지 외곽으로 4km에 이르는 소방도로가 건설됐고, 그 후 단풍나무가 심어졌다. 지금은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길이 되어있다.
이 길을 걷자면 나만의 사색 공간에 들어온 것 같고, 여러 번 와도 싫증 나지 않게 하는 뭔가가 있다.
여름에는 단풍나무 아래로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눈꽃 터널이 만들어지고, 봄에는 철쭉꽃이 활짝 핀다.
보물처럼 꼭꼭 숨겨놓고 혼자만 즐기고 싶었는데, 이젠 세상에 너무 많이 알려져서 그럴 수가 없다.
독립기념관과 흑성산 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냈다. 코 묻은 돈까지 반 강제로 내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무료로 드나들며 즐기고 있지 않는가.
단풍나무숲길 입구 단풍나무숲길 단풍나무숲길 단풍나무길 입구 지나며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해지고 독립기념관 뒤쪽으로 돌아갈 때쯤 흑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눈에 든다.
여기로 올라가면 산 동쪽능선을 올라 정상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하산할 수 있다. 산을 내려서면 단풍나무길을 다시 만나게 된다. 흙길과 나무계단을 이십 분 정도 올라 능선에 닿고, 콘크리트 길 지나 정상에 도착한다.
서편 전망대에 올라서니, 높고 낮은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모습과 달리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따스한 가을햇살 아래 시가지 여기저기 짚어보며 천안의 화려한 미래를 응원한다.
얕은 언덕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아담한 정상석이 박혀있다. 여느 산과 달리 디자인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흑성산 정상석 정상석 뒤로 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몇 발짝 걸으니 독립기념관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이른다. 눈앞이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풍광이 펼쳐진다.
아 ~ 정말 멋지다!
발아래 독립기념관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병천 읍내까지 한눈에 든다.
풍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서면, 명당 터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다.
저 아래 독립기념관 마당에서 시끌벅적하게 휴일을 즐기는 인파들도 이곳의 기막힌 조망은 알 수 없다.
여기에 올라 본 자 만이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을 제대로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흑성산은 독립기념관의 진산(鎭山)이다. 이곳에 오르는 것은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104년 전 독립정신을 기리며,
반만년 이어온 역사가 쉼 없이 발전하고,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길 열망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