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불빛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채 거대한 물결처럼 이어진다. "저 많은 차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들지만, 토요일 새벽 영동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티오프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두르는 골프 마니아들, 단풍놀이 가는 등산객들,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차량들이다. 그리고 나도 그 불빛 물결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어느새 횡성휴게소에 도착한다.
강원도에 올 때면 늘 이곳에 들른다. 자동차 엔진의 끓는 듯한 떨림을 느끼며, 긴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오면, 왠지 휴게소에 들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는 곳이다. 이곳에 들러 커피 한 잔 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다.
선재길진부 IC를 빠져나와 오대산 구역으로 접어든다.
선재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계곡을 따라 다양한 색으로 물든 단풍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주황과 노랑이 어우러져 마치 화려한 그림을 그린 듯하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맞으니 늦가을 정취가 더 가까이 느껴진다.
선재길을 따라 걷는 등산객들의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더한다. 붉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그들의 발걸음은 자연과 하나 되어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단풍이 절정에 이를 즈음,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차를 가로막는다. '더 올라가면 주차할 곳이 없으니 여기서 세우고 가세요'라는 안내를 하신다. "벌써? 아직 2km는 더 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면서 아쉬움은 금방 사라지고,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차량을 타고 이동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가을 단풍의 정취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귀에 들리고,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가을의 풍경은 더 가까워지고, 그 아름다움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단풍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상원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 깊은 골짜기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세조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을 텐데.... 세조가 이곳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날의 흔적이라곤 세조의 의관을 걸어 두었던 관대걸이만 남아 있다.
상원사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소개된 손명현 선생의 수필에 등장하는 사찰이다. 그 글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방한암 스님의 일화를 소개하며 인간의 참된 도리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6.25 전쟁 중, 국군이 후퇴할 때 이 절은 적군에게 유리한 엄폐물이 될 수 있어 작전상 불태워야 했다. 국군은 스님들에게 피하라고 했지만, 방 선사는 다른 스님들을 모두 하산시키고 혼자 절에 남았다.
군인들이 절을 찾아갔을 때 선사는 의자에 단좌 한 채 절명(絶命)해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을 본 군인들은 절의 문짝만 모두 떼어 절 마당에 쌓아 불태우고 그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 신념을 위해 신명(身命)을 바친 방 선사의 높은 행동과 그 앞에 옷깃을 여미고 떠난 군인들의 인간적인 행동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 시절 교과서에 실린 상원사의 사진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방한암 선사가 절을 수호하고자 했던 그 정신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이곳에 오면 나도 모르게 숙연한 마음이 들고 그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관대걸이절을 돌아 나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고, 한참을 더 오르니 중대사자암 기와지붕 위로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경사진 곳에 세운 특색 있는 사찰은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사찰 옆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또 오른다. 계단을 따라 설치된 스피커에서 은은하게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길을 따라 석등처럼 설치된 특이한 스피커는 적멸보궁까지 이어진다.
중대사자암잘 다듬어진 계단이 끝나고, 적멸보궁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비로봉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길이 가팔라지며, 힘이 드는 구간이 시작된다. 해발 1100m를 넘었으니, 400m 정도만 더 오르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볕이 비치면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쉬어 가기를 몇 번 반복하고 드디어 비로봉 정상에 도달한다. 1563m로,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은 상고대처럼 하얗고, 마치 설탕을 잔뜩 뿌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저 아래는 단풍 구경, 여기서는 눈 구경을 하는구나..."
단풍과 눈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이 주는 깊은 메시지를 깨닫는다. 붉은 단풍이 가을의 끝을 알리며 생명의 마지막 춤을 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첫눈이 조용히 내려앉아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서로 다른 계절과 감정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우리의 삶을 닮아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지만,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답을 찾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결국 내 삶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고 그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아닐까 싶다.
정상 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