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일 May 06. 2024

불암산

불암산 산행기

주말 아침 불암산으로 향한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 없 곳이다.


주변으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반원을 그리며 놓여있고, 다섯 개의 산이름 첫 글자를 따 "불수사도북"이라 부르는 종주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높이 508미터 화강암 바위산이며,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모자 쓴 부처 같다 하여 불암산(佛岩山)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남북으로 능선이 뻗어있고 태릉, 광릉, 동구릉 등 왕릉이 여럿 있다.


남쪽사면에 육군사관학교와 태릉선수촌이 자리 잡았지만, 선수촌은 진천으로 이전했고 육군사관학교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태릉선수촌 시절 국가대표 선수들이 불암산에서 크로스컨트리 훈련 했다고 한다. 그 시절 레슬링 선수로 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산악훈련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다.


불암산 오르기 훈련에서는 주로 권투, 레슬링 선수들이 상위권에 들었고, 역대 최고 기록은 세계챔피언 출신 문성길 선수가 세운 21분대 기록이다. 축구선수 출신 박지성도 전체 4위를 할 정도로 심폐지구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불암산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분한 분 계다. 국민배우로 불리는 최불암(崔弗岩) 선생이다. 요즘 "1958 수사반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어릴 적에 재미있게 봤던 "수사반장"을 모티브로 새롭게 제작된 TV프로그램이다. 젊은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지만, 수사반장 하면 역시 최불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흑백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드라마를 보던 시절, 최불암은 세상 모든 악인들을 잡아들이는 정의에 사도였고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국민배우로 칭송받는 최불암 선생은 노원구로부터 불암산 명예 산주(山主)로 위촉을 받으셨고, 그가 직접 쓴 시비가 이곳에 세워졌다.


불암산(佛岩山)이여!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廉恥) 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歲月), 영욕(榮辱)의 세월

그 웅장(雄壯)함과 은둔(隱遁)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 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雄志)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佛岩山)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容恕)하십시오

(불암산 명예산주 방송인 崔佛岩)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건조하고 팍팍하다. 물기라곤 한 바가지도 없는 계곡엔 푸석한 지푸라기만 날린다.

산행이 단조롭지만 산객들 떠드는 소리지루함을 다. 가파른 오르막길 한참을 오르니 깔딱 고개 정상에 올라선다. 평상처럼 생긴 나무데크 놓여있고, 등산로가 왼쪽 오른쪽으로 나뉜다.


이정표를 언뜻 보고 오른쪽으로 향한다.

10분쯤 지나니 불암산성 안내판이 보이고 평평한 헬기장이 나타난다. 꼭대기까지 다 오른 거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함을 느끼고 이정표를 다시 보니, 방금 지나온 방향으로 정상을 가리키고 있다.

"허 ~ 그거 이상하네. 지나온 길에 봉우리는 없었는데...."

벤치에 앉은 젊은이들에게 물으니, 내가 지나온 방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면 정상이 나온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깔딱고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갔어야 하는 건데.... 내가 반대방향으로 온 것이었다.

"세상 살다 보면 헛 일 할 때도 있는 거지 뭐...."

날씨도 더운데, 헛 걸음했다는 아쉬움 달래며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간다.


내리막길이라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500미터 정도만 가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 전에 올랐던 헬기장 봉우리와 달리 바윗길 능선으로 이어진다. 뜨거워진 바위 때문에 온몸에 열기가 확 오르지만, 탁 트인 조망이 충분한 보상을 해 준다.

 

계단 따라 몇 걸음 더 오르니, 우뚝 솟은 봉우리 위로 태극기가 보인다. 정성석 앞에 인증사진 찍는 산객들이 모여 있다. 주말 산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삼 일간 이어지는 연휴라 그런지 산객들 표정이 밝고 즐겁다.


바위 위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 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해도 뭐가 보이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위에 걸쳐진 밧줄을 잡고 유격 훈련하듯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다. 밧줄 교체한 지 얼마 안 된 듯 아직 손때가 덜 묻은 깨끗한 줄이다. 조금 무섭긴 해도 썩은 동아줄 붙잡은 건 아니니 끊어질 위험은 없어 보인다.


아! 이곳이 불암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꾸무리한 날씨 때문에 멀리 볼 수 없지만,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북쪽으로는 불수사도북 코스를 이어가는 능선이 뻗어있다. 상계동 건너편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가깝다.

도심 사이로 이렇게 아름다운 산줄기가 뻗어 내린 곳은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저 아래 고층아파트 사이에 있을 때는 삭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와 푸른 산이 조화롭고,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세상이 정말 멋지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작가의 이전글 북망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